취미생활/일상다반사

의외의 발견, 손자병법 여행편, 여행의 기술

해피콧 2008. 9. 7.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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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 of Travel, 한국어 제목은 여행의 기술이다. 손자병법이 영어로 The Art of War 이니 이 책은 손자병법 여행편이라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행에 관한한 이 책에서 거의 모든 것을 찾을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온다. 책 제목의 포스와는 달리 작가의 이름은 보통이다. 알랭 드 보통, 심상치 않은 이름이다.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않은 처음에는 좀 어려게 느껴졌다. 국수가락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듯 쉽게 읽혀지는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얘기를 하니, 읽기에도 어려운 것이려니 하고 생각했다. 편식을 하지 않는 내가 술술 읽히지 않는다고 해서 책을 손에서 놓을리 없다. 절반쯤 읽을 때까지 느낌은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 여행하는 사람의 내면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문학작품을 읽는 기분이었다. 기행기나 다른 나라의 문화를 다룬 여행책들과는 성격이 좀 다른 여행에 대한 고찰을 주제로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본질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쉽지 않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지만 쉽게 답을 얻을 수 없어 곧 잊혀지기 쉬운 것이 본질이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책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지만 '보통'의 책에서는 찾을 수 있는 게 있다면 바로 본질에 대한 추구일 것이다. 이런 점이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것이다.


이야기는 자신의 여행경험담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 접근하는 방식으로 풀어간다. 그리고 안내자라 부르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예로 들어 자신이 하려는 말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각 장의 주제별로 안내자는 누구누구 라는 식이다.  이런 작가의 이야기 방식은 나름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 작가가 말하려는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누군가의 예를 들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만 안내하는 당사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작가 맘대로 당신은 이 이야기의 안내자입니다 하며 말하는 작은 재미도 있다. 


책에서는 여행에 관한 몇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그 주제를 잘 보여줄 수 있도록 안내자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안내자는 읽는 사람이 주제를 잘 소화시킬 수 있도록  소화제의 역할을 한다. 개인적으로 크게 와닿지 않는 몇몇 안내자도 있었고, 이해를 돕기 위해 그보다 적절할 수 없을만한 안내자도 있었다. 그 중 친숙한 안내자가 있어 눈에 쏙쏙 들어오는 주제가 있어 소개한다. 이 안내자는 빈센트 반 고흐이다. 고흐는 이 책의 안내자중 내가 들어본적이라도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다. 고흐는 눈을 열어주는 미술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같은 사물을 보고도 사람들에 따라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일상의 풍경에서도 자신만이 느낀 대단한 무언가를 볼 수도 있다. 고흐는 그의 미술 배경이 되었던 지역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관찰력으로 대상을 그려냈다. 그림에는 실제 풍경과는 달리 주제를 가지고 있다. 고흐가 있기 전에 프로방스의 올리브나무는 그냥 의미없는 작은 나무였을 것이고, 사이프러스는 단순한 키다리 나무였을 뿐이다. 하지만 고흐는 남들이 보지 못했던 세계를 그렸고, 그 그림을 느낀 사람들은 올리브 나무에 대한 색다른 감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사이프러스의 변화무상한 아름다움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은 그제서야 고흐가 느꼈던 어떤 미묘한 풍경의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미술은 이렇게 일반 사람들에게도 일정 수준 이상의 '보는 눈' 혹은 여행지에서 미술가가 보았던 감정을 가지게 해준다. 한마디로 고흐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경험을 가능케 해 주는 것이다. 멋진 경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야를 고정시켜 버려 다른 무엇을 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좋은 점에 대한 단순한 반대급부라고 넘겨도 될 것 같다. 최소한 좋은 곳에 와서 그 좋은 것을 놓치는 돌아가는 아쉬움은 없지 않은가? 그 다른 무엇을 찾으려는 자는 자신만의 여행을 자신의 눈으로 찾을 것이다. 


그 밖에도 어떤 기대를 갖고 여행을 가야 하는 것인지,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가져야 할 질문, 여행시 느끼는 숭고함이란 무엇인가? 여행에서 느꼈던 감정을 간직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들이 마련되어있다. 책이 말하려고 하는 점과 표현하는 방식을 이해하면서 책을 읽는다면 생각했던것 보다 재미있는 책읽기가 될 것이다. 축구를 볼 때도 팀간 특성이 있고 한 팀은 어떻고 다른 한 팀은 어떻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 게임을 바라본다면 더 재미있게 게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고 말하는 관전 포인트가 있다. 이 책도 주제를 중심으로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며, 작가가 하고 있는 이야기를 읽어서 비교해 따져 보면서 읽는다면 다소 어렵더라도 책읽는 재미를 배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 이 책의 관전 포인트라 하겠다.


다 읽고 나서 이야기지만 책을 처음 고를 때에 내 생각은 이런 책을 읽으려는 게 아니었다. 의외의 발견이라고 말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요즘 아내가 매일 집에만 있으려는 나에게 실망을 했나보다. 여기 저기 좋은 곳에 좀 놀러다니자고 성화다. 착한(^^) 나는 여행에 관심을 좀 가져봐야지 하고 생각했고, 여행책을 찾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디 좋은 곳 없나 하는 생각으로 책을 찾아보다가 여행이란 단어가 제목에 있어 우연히 꺼내들게 된 책이 '여행의 기술'이다. 그런데 완전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어디를 가야 좋은지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는 책이니 말이다.  그런데 책이 가볍고 표지가 예뻐서 관심이 갔고, 기왕 여행하는거 '여행이란?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좀 보지 뭐' 하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의외로 발견해서 재미를 전해준 책 이야기인 것이다.


책을 고르면서 꼼꼼이 살펴보고 내가 원하는 책인지를 확인하고, 읽고, 역시 내가 원하던 것이었을 확인하고 하는 이런 과정은 나에게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평소에 관심있는 작가의 책을 사는 경우라면 이런 과정이 보통이겠지만 독서경험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꼼꼼이 검색해보고 책을 고른 경우는 기껏해야 여남은 권이 될까 싶다. 보통의 경우는 사전 정보 없이 쭉 훑어보다가 그 중 관심이 가는 책들을 고르곤 했다. 보통 사람들은 아마 나같이 바람직하지 않은 책고르기 습관을 가졌을 것이다. 이 때문에 현실적으로 서점에서 책을 어디에 배열해 두는가는 책의 내용보다 더 중요하고, 아무책이라도 베스트 셀러 코너에 비치해 두면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난다는 실험 결과도 있는 것이다. 선택은 선택이고 방법은 방법이다. 결국 우리는 진흙 속에 묻힌 진주목걸이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글을 쓰다 보니 책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오히려 나와 책에 대한 이야기의 성격이 강해졌다. 이런 것까지도 의외성이라고 말하면서 은근슬쩍 넘어가 보려 한다. 의외로 발견한 책, 여행이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게 해준 여행의 기술, 분명 이런 발견은 책을 읽는 즐거움 중의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