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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가볼만한곳 광교역사공원 , 혜령군 이지의 묘 심온선생의 묘

해피콧 2018. 7. 5.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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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수원 잘알기 1편입니다.


광교역사공원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제 수원사랑에 대한 이야기 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줄곧 이사를 자주 다녔던 것 같습니다.

서울 구로, 종로, 영등포, 부천, 양천구, 강서구, 경기 안산 등 이 곳 저 곳 살았네요.

지역도 별다른 공통점이 없고요. 그래서 나는 스스로 서울사람이라 생각도 들지 않았고, 부천사람은 더욱이 아니었으며, 성인이 된 이후 줄곧 안산에서 살았음에도 안산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지역 정체성이 없다고 할까요?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서울이지만 사진속에서만 봤으며, 기억나는 장소는 부천에서부터였습니다. 다시 서울로 이사를 갔었지만 부천에서 온 사람이었으며, 성인이 된 이후 안산에서 살았지만 왠지 모르게 내가 안산사람이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큰 애정이 있었던 곳이 없었기에 그 지역 정체성이 없었던거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가 수원에 정착하고 살게 된지 11년이 되니 이제는 스스로 수원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향과 별개로 나는 수원사람이고 나는 수원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렇게 된 계기가 수원에 대한 애정이 생겼기 때문인데, 그 애정은 수원에 있는 문화재, 특히 수원 화성에 대한 애정이 그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수원은 역사와 문화의 도시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많은 역사 유물이 남아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문화재에 애정을 가지게 되었고 자주 방문도 하였습니다. 

수원 화성이 대표적인 수원의 문화재이죠. 수원 화성에 특히 자주 갔었고 특히나 화홍문 옆에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인 동북각루 방화수류정에 특별한 애정이 있어서 수원 화성에 갈때마다 꼭 들러서 방화수류정에 앉아 앞에 있는 용연의 모습을 보며 쉬곤 했습니다. 아내가 전생에 조선시대에 여기 살았던거 아니냐고 말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짐작이 가시겠죠. 


방화수류정은 내부까지 일반에 개방되어 있습니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서 용연이 바라다보이는 난간앞에 앉아서 쉴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화성에서 산책을 하는 중간에 쉬어가기 딱 좋은 장소였죠. 앉아서 쉴 수 있으니 그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건 당연하겠죠.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방화수류정을 좋아하는 사람이 정말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방화수류정에서 쉬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같이 올라가서 쉬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거든요. 그분들 모두 저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수원에 대한 애정이 이렇게 들었는데 다른 수원의 문화재들도 함께 애정해줘야겠죠?


가진 애정 다 드릴테니 제 가슴에 노크 똑똑 해주세요~



자주 지나다니는 길에 광교역사공원이 있습니다.

광교역사공원에는 두개의 묘와 수원광교박물관이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혜령군 이지의 묘, 심온선생의 묘 두군데를 소개하고 

다음 포스팅에 수원광교박물관을 포스팅하려고 합니다.


자주 다니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서 이 곳에 엄청나게 큰 묘가 있다는 것을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이 알 겁니다.

이마트에서 쇼핑하면서도 창밖으로 딱 보이는 곳, 딱 보기에도 왕릉같아 보이는 혜령군 이지의 묘가 있고

그 옆에 왕릉만큼은 아니지만 대단한 집안의 누군가의 묘라는걸 한눈에 알 수 있는 심온선생의 묘가 있습니다.


차타고 지나가면서도 보이고, 마트쇼핑하면서도 보이니 

어떤 묘인지, 릉인지는 몰라도 대부분 동네사람들이면 인지하고 있는 곳,

바로 광교역사공원입니다.






날씨가 정말 좋았던 날 사진이 너무 예쁘게 나올 게 너무 확실해진 이 날

저는 혜령군 이지의 묘에 왔습니다.

이런 날 찍는 사진은 정말 너무 좋습니다.


이렇게 좋은 사진도 건지고 문화 유적지에서 역사공부도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요 ^^


사진만 찍을 순 없죠. 이제 어려운 게 남았습니다. 

역사이야기를 알아봅니다.


팻말에 써있는 걸 옮겨왔습니다.

혜령군 이지의 묘 The Tomb of Prince Hyereong

1407년(태종7년)~1440년(세종22년), 이름은 이지이고, 태종의 아홉번째 왕자이자 세종의 이복동생으로 태어나 34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혜령군은 매우 호방하고 활달하여 무를 좋아하고 사냥을 즐겼다. 혜령군의 묘소는 처음엔 수원시 동문 안쪽에 위치했었는데, 세종대왕의 장인 심온 선생 묘(경기도 기념물 53호)를 왕자의 묘와 함께 나라에서 관리하길 원했던 세종의 명에 의해 영통구 이의동 산234번지 경좌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의 묘소는 2008년 경기도와 경기도시공사가 광교역사공원 조성을 위해 안효공 심온선생 묘소의 서쪽 능선 옆으로 묘를 이전하였으며 수원에서 유일한 왕자의 묘이다.


읽어보니 왕릉처럼 큰 이곳은 왕자의 묘 입니다. 

어쩐지 왕릉같다 싶었습니다. 왕자의 묘도 예사롭지 않군요.

일반인들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작은 산이기에 경사도 매우 가파릅니다. 뜨거운 햇볕에 땀이 줄줄 흐릅니다.

그래도 자세히 볼 수 있고 사진도 찍을 수 있어 좋습니다.


아 생각해보니 융건릉도 한 10년 전에는 릉 앞에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몇 년 전에 가보니 밑에서부터 난간이 설치되어있어서 올라갈 수가 없게 되었더라고요. 


이렇게 문화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게 언제까지나 당연한 게 아닐 수 있으니 자세히 볼 수 있을 때 많이 봐두어야겠습니다.









묘역이 아래층과 윗층으로 두개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족묘로서 윗층에는 혜령군과 부인, 아래층에는 손자와 증손자의 묘가 안치되어있습니다.

윗층의 비석이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많은 것으로 봐서 누가 더 어른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봅니다.

일단 손에 칼을 든 무인석이 없네요. 왕릉은 무인석이 있어야 하므로 일단 왕릉이 아닌 것이 맞네요

병풍석이나 난간석도 없어서 봉분은 소박한 모습이네요.

군 칭호의 혜령군, 왕자의 묘는 이정도였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얼마나 좋은 사진이 나와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날이 쨍쨍하니 너무 밝아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일 리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냥 스마트폰의 자동모드를 믿고 찍습니다.

혜령군 이지의 묘는 뒤로하고 광교박물관 방향으로 향하려는데 광교박물관 뒷편으로 혜령군 이지의 묘가 어렴풋이 보입니다. 

나무들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모습이 제게 안심을 줍니다.


나무들이 말합니다.

'먼저 가! 여기는 내가 맡을께~'


' 수고~'

짧게 답장을 주고는 이제 반대편 심온선생의 묘로 향합니다.


광교역사공원의 양 끝에 혜령군묘와 심온선생의묘가 있으니 

여기서 심온선생의 묘로 가려면 광교박물관을 지나서 공원을 지나서 가야 합니다.


공원은 넓은 부지에 마치 궁궐에서 봤음직한 담벼락으로 구획이 나뉘어져있습니다.

무언가 행궁이나 궁궐의 느낌을 재현하려고 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옛 궁궐안에서 뛰노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라고 뻥뚤린 잔디는 또 옆에 있으니 이런 느낌 느껴보라고 했나봅니다.








광교카페거리쪽으로 방향으로 더 가면 심온선생의 묘가 나옵니다.


심온선생의 묘는 좀 더 관리가 엄격하네요. 

출입구부터 막아 놓아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묘역에 들어가는 길에 다 담이 둘러져 있습니다. 

바로 옆에 문화재같이 생긴 대궐같은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심온선생의 후손인가봅니다.

여기에 살면서 이 곳을 관리하는 모양입니다. 

이건 제 추측이니 혹시나 잘못된 정보라면 댓글 부탁드리겠습니다. ^^


심온선생의 묘도 팻말에 적혀있는 내용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심온선생의 묘 The Tomb of Sim On

조선 초기의 문신 안효공 심온(?~1418)선생의 묘소이다.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고려 조정에서 벼슬을 하다가 조선 왕조 건국에 참여하였다. 태종 11년(1411년) 황해도 관찰사가 되어 포악한 정치를 일삼던 박영우를 파직시키고 대사헌이 되어 관의 기강 확립에 힘썼다. 세종이 즉위하자 국왕의 장인으로서 영의정이 되었다. 태종18년(1418년)에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 도중에 태종의 병권장악을 비난한 것이 문제가 되어 의주에서 체포되어 수원에서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았다. 이 사건은 국왕의 장인으로서 세력이 커짐을 염려한 태종과좌의정 박은 등이 거짓으로 꾸민 사실이 후에 밝혀지게 되어 세종은 관직을 복직시키고 안효라는 시호를 내렸다. 1979년 9월 10일 경기도 기념물 제 53호에 지정되었다.

수원역사공원의 두 묘역이 모두 세종대왕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군요

혜령군은 세종의 이복동생이며, 안효공 심온선생은 세종의 장인입니다.

세종이 이 두 묘를 나라에서 관리하기를 원했다니 세종대왕이 특별히 아끼는 가족이었구나 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금은 나라에서 관리하는지 후손들이 관리하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궁금증이 생겼는데 어떻게 알아봐야 알 수 있을까요? 그냥 안궁금한걸로 하겠습니다. ^^ 



안효공이라는 글자는 한자에서 읽을 수 있겠네요.

안효공 심온선생의 묘는 들어갈 수 없으니 멀리서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바로 맞은편에 버스정류장쪽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이 있어 그리 올라가니 잘 볼 수 있었습니다.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잔디가 빼곡하게 들어차있고 소나무에 각종 조경수들에 한옥 기와집건물이 참 보기 좋습니다.







광교역사공원에 있는 혜령군 이지의 묘와 심온선생의 묘 모두 정말 좋은 자리라는 것이 참 맞는 것 같습니다. 

흔히 명당자리라고 하죠. 제가 지리적인 지식은 없지만 여기서 딱 보면 좋게 자리하고 있는 곳임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양지바르고 감싸고 있는 아늑한 느낌에 조망도 뛰어난 곳이니 좋긴 좋습니다.


시골 부모님 댁 근처를 돌아다녀보면 꼭 전원주택 짓기 좋아보이는 햇볕 들고 야트막한 언덕을 품고 있는 곳들이

묘자리가 많이 있는 것을 봤었습니다. 저는 보면서 딱 저자리에 전원주택을 지으면 좋겠구만~ 이런 생각을 몇 번 해봤었거든요

좋은 자리들은 먼저 계셨던 분들이 먼저 알아보고 다 차지하고 계시구나 하는 저만의 상상도 해봅니다.


이렇게 좋은 위치여서 오며가며 사람들에게 좋은 의미로 베풀고 있는 묘 문화재임에도 

때로 발생하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저희집 꼬맹이가 더 꼬맹이였던 시절, 

'저거 뭐야' 라고 물어보길래 

'옛날 왕족이 묻힌 무덤이야' 그랬더니

지나갈때마다 '무덤에는 죽은 사람이 있는거잖아' 하며 눈을 감고 무섭다고 눈을 안뜨더군요. 

꼬꼬마시절에는 무서울 수도 있는 수원의 명소입니다.



길게 적었지만 바로 한줄요약 들어갑니다.

수원에 살면서 바로 가까이에 이런 문화재가 있고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참 행운인 것 같습니다.


수원에 대한 짝사랑을 고백하며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끝.



2편은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여행, 나들이/서울, 경기] - 수원 가볼만한곳 광교역사공원 수원광교박물관

http://happycode.tistory.com/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