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나들이/국내 기타 나들이

영월 여행 가볼만한곳, 조선왕릉 장릉, 단종에 관한 역사 이야기

해피콧 2018. 6. 8. 02:20
'); }
'); }


 영월, 영주 여행 5부작


 1부, 선암마을 한반도지형, 뗏목 타고 전국을 항해하다 
       http://happycode.tistory.com/441
 

 2부, 조선왕릉 장릉, 단종에 관한 역사 이야기
       http://happycode.tistory.com/442

 3부, 영월의 볼거리 선돌, 영월의 빼어난 자연경관
       http://happycode.tistory.com/443

 4부, 부석사 가는 길... 프롤로그
       http://happycode.tistory.com/449

 5부, 부석사, 전망 좋은 절 끝판왕
       http://happycode.tistory.com/450


영월이 왜 지붕없는 역사 박물관인지 알게 해준 장릉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영월에 다녀오고 나서 여행일기를 적으려는데, 역사적 지식 없이는 영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가 없겠더군요. 영월은 무엇 하나를 이야기 하려 해도 역사적 사실과 꼭 함께 하게 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조선왕릉인 장릉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니, 더욱 더 역사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간만에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해 주었고, 재미있게 조선왕조의 역사 공부도 하게끔 도와준 '장릉 다녀온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영월에 들러 한반도지형 관광을 하고 선암마을 한반도 땟목 마을에서 땟목 체험을 하고 나니 허기가 집니다. 이미 밥때를 놓친 후라 늦은 점심을 먹으러 영월 시내로 향합니다. 영월에서 곤드레 나물밥이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들어간 시내의 한 곤드레나물밥집으로 들어갑니다. 먹어보니 맛이 깔끔하면서 건강해질 것 같은 좋은 느낌입니다. 훌륭하게 차려진 한 상 먹고 나서 영월의 한 마트에서 요리할 거리, 과일 등등 이것 저것 좀 사고 나니 시간이 꽤 늦어졌습니다. 해가 지기 전까지 한 두군데 정도만 들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월 관광 안내도에 나온 모든 곳을 다 가보려던 처음의 마음과는 달리, 이제는 과감히 다 포기하고 한두개만 고르기로 합니다. 땟목 타면서 강가에서 한참 놀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강이 아닌 다른 곳을 찾아가보기로 합니다. 영월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어서 가려고 마음먹었던 청령포의 사진을 보니 강가에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강가에 있다는 이유로 일단 순위에서 미루어둡니다. 청령포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갈 곳을 물색하기 위해 관광 안내도를 보다 보니 영월에 온 후부터 이 도시는 정말 많은 곳이 단종과 관련된 장소인 걸 알게됩니다. 과연 단종과 영월과는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알아보러 단종역사관이 있는 장릉으로 결정합니다. 또 유명한 볼거리인 선돌이 바로 근처이기도 했기 때문에 일타쌍피를 얻을 수 있는 곳입니다. 


바로 장릉으로 향합니다. 시내 바로 근처에 장릉이 있어 금새 도착합니다.


▲ 장릉 입구의 모습


사실 영월에 단종의 왕릉인 장릉이 있다는 것도 영월에 오고 나서 관광 안내 지도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최근에 선정릉을 다녀오면서 왕릉 안내자 할아버지의 조선 왕릉의 역사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감동을 받아서 이후로 조선 왕릉에 관심이 많았었는데요 그래서 융건릉도 한번 더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조선왕릉 장릉을 만났으니 그 모습이 내심 궁금해집니다. 


장릉은 왕릉 중에서 수도인 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왕릉입니다. 생각하고보니 제가 잘못알고 있던 사실이 있었습니다. 조선왕릉은 모두 수도권에 있는 줄 알았었는데 아닌것입니다. 알아 보니 왕릉과 왕비릉 44기의 대부분 수도권에 있지만, 왕릉 몇 기는 좀 멀리 있습니다. 그 중 강원도 영월에도 조선왕릉인 장릉이 있습니다. 왜 수도였던 한양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 조선 왕릉이 있는걸까요?  일단 멀리 떨어진 거리만 봐도 왕릉이 되기까지는 순탄치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됩니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궁금해집니다.


 왕릉에 오니 알아볼 것이 너무 많습니다. 단종이라는 왕이 어떤 왕이었는지, 그 당시의 역사적인 사건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등등 모르는 게 너무 많아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학교다닐 때 국사시간에 분명 일부분을 배웠기도 했을 것이고, 드라마 사극의 소재로도 한번쯤은 봤을 것 같은데 기억이 전혀 나질 않습니다. 이번참에 다시 한번 알아보고 포스팅을 하기 위해 또 한번 알아보고, 뭐가 이렇게 알아볼 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장릉을 다녀온 김에 단종과 관련한 조선시대 당시의 역사에 대해 공부를 좀 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장릉 한번 다녀와서 간만에 역사 공부 엄청 합니다.  


공부할 자료가 많으니 쉬어가는 차원에서 잠시 장릉의 아름다운 모습을 먼저 보겠습니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단종은 참 안된 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간략히 백과사전의 내용을 옮겨보겠습니다.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 사이에서 태어난 조선 6대 왕입니다. 문종이 왕위에 올랐을 당시 병약한 것을 걱정해 황보인, 김종서 등과 집현전 학자인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등에게 세자인 단종이 어린나이에 즉위를 하더라도 잘 보필할 것을 부탁하게 됩니다. 결국 어린나이에 단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고 황보인, 김종서 등이 대신 정치를 하게 됩니다.


 한편 당시 세력을 키우고 있던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 있었는데, 한명회 등의 무인세력을 휘하에 둔 수양대군이 야망의 기회를 봐 쿠데타를 일으키게 됩니다. 궁궐로 들어가 당시 실권을 잡고 있던 김종서를 죽이고 왕명을 사칭해서 당시 권력자들을 궁궐로 불러모아 모두 죽이거나 유배를 보내고 본인이 실권을 잡습니다. 이게 바로 계유정란입니다. 단종은 군대를 장악한 수양대군에 의해 이름뿐인 왕이 되었고, 이후 수양대군은 한명회 등 당시 계유정란의 성공에 일조한 세력들에 의해 스스로 왕이 되어 세조가 됩니다. 단종은 세조에게 왕위를 내주고 상왕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단종은 자신을 보필하던 신하들은 아무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큰일을 맞았으니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을 것 같습니다. 


 이듬해 충신의 대명사 사육신, 생육신이 시도한 상왕복위사건이 실패로 돌아가자,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이 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청령포는 삼면은 강으로 둘러쌓이고 뒷면에는 절벽같은 산이 있어 마치 섬 같은 지형을 가지고 있는 데 이 곳으로 유배를 보낸 것입니다. 이렇게 격변하는 시대에 야망가들에 의해 휘둘리다가 유배지에서 생활을 하다가 다시 한번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후 다시 노산군에서 서인이 되었고, 이후 끊임없이 자살을 강요당하다가 세조에 의해 사약을 받고 승하하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겠죠. 수양대군또한 대단한 능력자였을 것입니다. 성공적인 쿠데타를 성공했으니깡. 아마도 단종은 본인 능력으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단종이 남긴 시를 읽어보면 그런 안타까와 하는 마음이 드러나니까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단종의 유해를 수습하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는 엄명에도 불구하고 영월의 호장인 엄흥도라는 인물이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달게 받겠다며 충정으로 옥체를 밀장하였고 그 덕에 장릉을 만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거의 60년이 흐른 후 중종이 노산묘를 찾으라는 왕명이 있었고 25년이 흐른 후에 당시 영월 군수인 박충원에 의해 노산묘를 찾게 되어 왕릉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됩니다. 그 후 150년이 흐른 후 숙종 때가 되서야 왕으로 복귀되어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이라고 칭하게 됩니다.


 역사공부하려니 장난이 아닙니다. 백과사전을 보면서도 이것 저것 검색을 하고 자료도 읽어보고 하니 간만에 재미있습니다. 앞으로 역사공부 더해서 조선왕릉 안내자 같은거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 낙촌 비각


 장릉 입구에 들어가서자마자 나오는 박충원 낙촌비각이 보입니다. 노산묘를 찾았던 영월 군수라고 간략하게 소개한 박충원의 충신됨을 후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최근인 1973년에 지어서 낙촌기적비가 보호되어있는 곳입니다. 비문에 적힌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니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또 간략히 소개해보겠습니다.


 단종의 유해를 수습해 밀장을 한 엄흥도가 죽고나자 그 묘를 찾을 길이 없었는 데, 그 후 영월 고을에 군수가 부임하면 부임 초에 원인 모를 이유로 목숨을 잃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7명이나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이 고을에 부임되고 싶지 않았겠죠. 그러던 중 박충원이 군수로 부임하게 되었고, 분명 단종이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나타난 것일 거라 생각을 하고 있던 박충원은 부임하고 난 후 관복을 차려입고 단종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꿈에 여섯 신하가 어린 임금을 모시고 있는 것을 보고는 엄흥도의 후손을 앞세워 단종의 묘를 찾은 후 정비하고 제사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 후 군수가 부임 초에 죽어가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는 내용이 기록이 되어있다고 합니다.


▲ 낙촌 비각


 장릉을 들어가면서부터 딱 드는 느낌은 관리가 참 잘 되었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조선왕릉의 모습이 아주 정갈한 느낌을 줍니다. 처음 시작은 노산군묘로 시작되었지만 왕릉으로 추존된 후부터는 다른 왕릉과 똑같이 관리를 잘 해온 것 같습니다. 왕릉을 관리하는 재실이 보이고 용기있게 단종의 유해를 밀장한 엄흥도 정려각도 보입니다. 

 단종의 이야기에는 충신의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사육신, 생육신을 비롯해 엄흥도, 박충원 등 많은 충신들의 이야기들이 함께 하는 걸 보니 애석한 왕이었지만 또한 승하한 이후에도 복이 많으느 왕이었던 것 같습니다. 문종의 유언도 있었겠지만 어린나이라도 매력이 있었던 왕이었던 것 같습니다.

▲ 엄흥도 정려각


가족들과 나들이 오기에도 참 좋은 곳입니다. 공원으로 잘 꾸며져 있으니 좋고,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공부도 되니 또 한번 좋을 것 같네요. 특히 아이들이 있다면 아이들에게 이야기꺼리들을 들려주고 역사의식을 키울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어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번 독립기념관으르 다녀오고 나서도 느낀 것인데 역사의식이란 것을 가진다는게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역사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느끼며, 미래를 설계하는데에 있어 발전적인 마인드를 가졌으면 하는 바램은 저만의 것이 아닐겁니다. 아이들에게 그런 역사의식이 억지로 주입해서 가능한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인 유물이나 유적지, 전시관 등을 다니면서 같이 대화도 하고 역사이야기도 해야 하는 것이겠죠.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역사 의식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들어서 여행을 다니다 보니 저도 역사의식같은게 생기는 것 같아 일단 제 경우에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의 심리는 어떨까 궁금합니다.


 저도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조선왕릉에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려고 합니다. 그 때 아이가 지루해 하면서 듣기 싫어하면 어떻게 하죠?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해서 이야기를 많이 해 줄 것 같긴 한데 한가지 걱정은 듣는 아이는 하나도 재미 없는데 얘기하는 저만 신나서 막 얘기하는 것입니다. 가끔 저와 아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저만 혼자 신나서 막 떠들고 있는데 잠시 지나면 아내는 이미 정신이 혼미해져서 졸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려면 듣는 사람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좋은 이야기꾼이 되어야 할텐데요. 앞으로 연습도 좀 하고 갈고 닦아서 아이들 생기면 좋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아빠가 한번 되보렵니다. 쉽진 않겠죠?



▲ 장릉


단종이 승하한 지 241년 만에야 다시 복위된 단종의 장릉 모습입니다. 설명을 보면 추복릉의 전례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가만히 왕릉의 모습을 보니 조선시대 왕릉을 구분짓는 가장 큰 요소인 난간석과 무인석이 없습니다. 추복릉의 경우에는 그렇게 하는 것인가 봅니다. 나중에 칭호를 높였다고 해서 새로 난간석을 만들어 넣거나 무인석을 설치하지는 않았나 봅니다. 연혁을 살펴보니 봉분을 갖추고 상석과 표석, 장명등, 망주석 등을 만든 시점이 아직 단종으로 복위되기 전인 노산묘였을 때입니다. 그래서 그때는 왕릉이 아니었기 때문에 난간석과 무인석을 세우지 못했던게 아닐까 하고 추측해 봅니다. 자세히 설명해 주시는 안내자 분이 있었다면 질문을 했을 텐데요 그렇지를 못한게 좀 아쉽네요. 나중에 좀 시간내서 알아봐야겠습니다.  


6시가 다 되니 장릉에서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곧 문을 닫아야 하니 관람객들은 밖으로 슬슬 나가달라고 합니다. 우리가 예정에 없던 땟목놀이에서 시간을 많이 사용하는 바람에 장릉에서는 좀 서두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좀 서둘러서 이것 저것 돌아봅니다. 아름다운 장릉의 모습안에 들어있는 많은 역사적 의미를 찾는 것은 집에 가서 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일단 사진을 많이 찍어둡니다. 그리고는 급하게  출입구 밖으로 나옵니다.

 아름다운 장릉에서 단종에 대한 이야기도 배우고, 역사 공부도 하고 머리도 식힐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 아름다운 장릉의 모습을 한번 쭉 보시죠 











 밖으로 나온 다음에도 좀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 프레임에 더 담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한 쪽에 있는 거대한 보호수 나무로 가서 또 구경도 해보고 주차장 쪽 장릉 앞 담으로 가서 담넘어로 사진도 더 찍어보기도 합니다. 넓은 잔디가 펼쳐지니 모습이 오히려 장릉 안에 있을 때보다 더 잘 나오는 것 같습니다. 역시 미련을 가지고 더 셔터를 눌렀던 것이 이런 좋은 풍경을 담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기분이 좋아지네요.


▲ 바깥에서 담 넘어에 보이는 찍은 장릉의 모습


이번 포스팅을 하면서 좀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려다 보니까 대충 둘러 봤던 것들을 정리하게 되었고 백과사전도 찾아보게 되고  다른 분들의 블로그를 읽고, 또 안내자료등을 다시 꼼꼼히 읽어보게 되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조선왕조에 대한 사전 지식이 별로 없어서 사실 알아보느라 좀 힘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보람되는 일이었던 것 같아서 지금 이 글을 적는 순간에도 약간은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것이 블로깅을 하면서 얻는 선물이겠죠. 



여행일 : 2011년 5월5일(목) ~ 5월8일(일)

교통편 : 자가용 이용, 북수원IC - 만종JC - 제천IC - 38번국도

 

* 장릉 연혁 :

1516년 (중종 11) 암장지를 찾아 봉분 갖춤

1580년(선조 13) 상석과 표석, 장명등, 망주석을 세워 능역 조성

1698년(숙종 24) 단종으로 복위하고 능호를 장릉으로 높임

 

*장릉 제향일

- 매년 4월 마지막주 금,토,일(단종문화제) : 영월군 단종제위원회

- 매년 10월3일(양력) :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장.시릉부향회 주관

- 매년 10월 24일(음력) : 단종대왕이 사약받고 돌아가신 날(기신제) 단종제보존회



 영월, 영주 여행 5부작


 1부, 선암마을 한반도지형, 뗏목 타고 전국을 항해하다 
       http://happycode.tistory.com/441
 

 2부, 조선왕릉 장릉, 단종에 관한 역사 이야기
       http://happycode.tistory.com/442

 3부, 영월의 볼거리 선돌, 영월의 빼어난 자연경관
       http://happycode.tistory.com/443

 4부, 부석사 가는 길... 프롤로그
       http://happycode.tistory.com/449

 5부, 부석사, 전망 좋은 절 끝판왕
       http://happycode.tistory.com/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