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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여행] 미국 서부 여행기, 설렘과 감동

해피콧 2017. 5. 14.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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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가슴 설레게 만든 특별했던 여행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여행 경험이 많지 않은 초보 여행자인 나이기에 느낄 수 있었던 감정과 감동을 담은 경험담이다. 나는 다시 여행 전날 밤으로 돌아가 그날을 기억해본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보름 이상 지나 조금씩 희미해져 가고 있지만, 그때의 설렘을 잊지 않고 있다. ‘2010년10월 23일 토요일, 안 오는 건 아니겠지?’ 하며 그렇게 기다리던 시간이다. ‘기다리니 이 날이 정말 오는구나!’ 출발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잠드는 일만 남겨 놓고 든 생각이다. 앞으로도 여행을 다닐 기회를 많이 갖겠지만, 이번 여행은 훗날 과거를 돌아봤을 때 여행의 즐거움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는 첫 시작으로 기억을 하게 될 것이다.


 

 

  해외여행을 꼭 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추석 연휴 기간동안 다녀오는 것을 목표로 항공권을 알아본 것이 이번 여행의 시작이다. 유럽, 미국, 호주, 동남아 등등 어디든 좋다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이집트, 터키, 그리스, 프랑스 등 유럽 쪽 항공권을 주로 알아보았다. 하지만 추석 연휴에는 도저히 못 가겠다는 결론에 이른 후 다른 날짜를 알아보던 중에 대한항공에서 나온 도쿄 경유 LA 티켓이 눈에 들어왔다. 약간 싸게 나온 가격 때문에 마음은 미국으로 훅 쏠렸고, 적당한 날짜에 2장의 티켓을 결재했다. 티켓을 결재하는 짧은 순간동안에도 설레임, 두려움을 포함해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결재버튼을 클릭 한 지 몇초 지나지 않아 휴대폰 문자로 200만원을 상회하는 일시불 카드사용 내역이 날라온다. 큰 금액을 보니 약간은 두려운 마음도 들었지만 속으로 ‘나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돈인데 이정도는 아깝지 않아’ 하는 생각을 하며 안도한다. 소비의 즐거움에 눈을 뜨고 있는 것이다. 항공권 쇼핑을 마치고 결재 했을 때의 느낌은 아마 명품백 마니아가 명품백을 쇼핑하고 결재할 때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돈 많이 벌어야겠는걸...'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이렇게 여행 다니려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한다.   

 

 아직 2달이나 남은 여행이지만 연휴 때 여행일정을 다 세워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하나씩 알아보기 시작한다. 어느 도시를 방문할 것인지 정하고 숙소를 알아보는 등 미국을 여행하는 방법을 익힌다. 연휴기간 동안 하루 평균 7~8시간을 미국 지도와 미국 여행 관련 자료들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런 행복한 시간이 영원히 지속 됐으면 하는 마음도 잠시, 연휴는 끝났고 앞으로 여행날이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희미하게 잊어버린 채 다시 바쁜 날들이 계속된다. 여행 출발일인 금요일이 낀 그 주가 되어서야 ‘아 이제 슬슬 여행 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늘 있는 압박에 시달리는 회사 생활을 꽤 오래 지속하다 보니 힘들게 여행가지 말고 그냥 집에서 쉬고 싶단 생각마저 든다.  이상하다. 한두달 전의 흥분되던 감정과는 좀 다르다. 오히려 지금은 좀 귀찮다. 들떠 있던 마음은 다 어디 갔는지 차분하다. 너무 초반에 좋아해서 그러나? 나도 궁금하다. 여행을 가려고 한 이후부터 내 감정 하나하나에 모두 의미를 두려고 하는 요즘이다.

 

 여행의 첫째날 아침이 밝았다. 약간은 피곤하다. 놀러가든 일하러 가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다 힘들다. 일하러 가기 위한 것도 아니고 놀러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더 자고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역시 식욕, 수면욕 등 신체적 욕구가 여행의 욕구등 자아실현의 욕구보다 강한 것이 확실하다. 또 인간은 다 그렇다고 하니 내가 인간임이 증명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피곤하고, 떠나기 위해 무언가를 분주히 준비해야 하는 것도 귀찮긴 하지만 일단 출발을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진다. 회사 안 가고 노니까 기분이 좋은건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늘은 토요일이라 원래 회사를 안 가는 날이었다. 이런 날은 토요일,일요일,공휴일을 계산하면 사실 1년에 100번도 넘게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혹시나 금요일처럼 평일에 출발하면 지금보다 더 기분이 좋을까 하는 궁금증이 살짝 스친다. 아뭏든 휴가 쓰고 그냥 집에만 있어도 좋은 걸, 해외로 놀러가기 까지 하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이유가 또 있을까 싶다.  

  

 아침 7시에 공항리무진 버스를 타기 위해 집에서 출발을 한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 도착한 버스에서 좀 문제가 발생한다. 버스카드기가 고장났다는 이유로 현금 승차만 가능 하다는 것이다. 현금이 없던 우리는 승차거부를 당했다. 항의를 하고 다른 방법을 동원해 달라고 해봐도 어쩔 수 없다는 답변 뿐이다. 살짝 언짢은 기분으로 다음 버스를 타야만 했다. 어찌 보면 버스 승차 거부 건은 이번 여행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앞으로 겪을 미국에 도착한 후의 일들을 보게 되면 무슨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은 예측 불가능의 연속이다.


 다행히 일찍 출발을 해서 공항에는 그리 늦지 않게 도착했다. 항공권을 발권하고 출국심사대를 무사히 통과 하고 나니 탑승까지 1시간 반정도가 남는다. 비행기를 타면 어짜피 잘 계획이기 때문에 몸을 좀 피곤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넓은 면세점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한다. 올때마다 느끼지만 인천공항면세점은 정말 좋은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쇼핑몰이라도 쇼핑을 하다보면 금방 지치게 된다. 특히 무언가 특별히 사려는 게 없을  때는 더욱 그렇다. 보통 쇼핑을 나가면 항상 아내보다 내가 먼저 지쳐서, 의자만 보면 앉으려고 했다. 하지만 오늘은 반대다. 아내가 의자만 보면 앉으려고 한다. 아마도 사려는 게 없는 모양이다. 나는 시식용 초콜렛을 먹으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재미에 힘이 드는지 몰랐는데 말이다. 역시 목표의식이 없으면 지친다. 작은 일에서도 교훈을 얻게 된다. 그런데 꼭 시식을 해보려 했던 딸기가 박혀있는 초콜렛은 시식으로는 먹어볼 수 없었다. 하나 살까 했지만 미국까지 가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 데, 그런 사소한 호사까지 다 누리긴 좀 찔려서 건진 것 하나 없이 탑승구로 향한다.

 

 비행은 인천을 출발해서 도쿄를 경유하고 LA에 도착하게 된다. 총 걸리는 시간은 16~17시간 정도이며, 도쿄 나리타 공항에서 대기하는 시간은 2시간 정도다. 경유 항공권이지만 이 정도면 직항이 부럽지 않다. 오히려 일본 공항도 둘러볼 수 있어서 더 기대가 된다. 비행이 시작되고 가볍게 2시간 정도가 지나자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다. 공항 수속 등으로 40분 정도를 소모하고 나니 탑승 시간까지 1시간 정가 주어진다. 일본 땅을 처음 밟아보는 것이고 주변에 일본말이 이렇게 많이 들리는 경험은 처음이라 신기하다. 상점안의 예쁜 종이접기 전시관, 공항 곳곳에서 누워서 쉴수 있도록 마련한 쉼터, 편리한 무선 인터넷 등등 인천 공항 못지않은 편의 시설을 볼 수 있다. 공항 밖으로 나가지 못하긴 했지만 공항 안의 풍경 만으로도 일본에 대한 특별한 인상을 받는다. 또 이 곳의 사람들은 어찌 그리 다들 패셔니스타들인지 다들 패션감각이 독특하다. 공항에 오는 사람들이 좀 꾸미고 오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특히 나이가 좀 있으신 분이 스타일리쉬하게 하고 다니는 일본인들이 많이 보인다.

 

 일본상점 구경도 재미있어 더 있고 싶었지만 금새 비행시간이 다가온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도쿄 발 LA 행 비행기에 올라탄다. LA에 도착 예정 시간은 현지 시간으로 오전 9시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시간이란 것이 참 묘하다. 토요일 오전11시에 인천을 출발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면 토요일 오전 9시인 것이다. 시차가 있으니 당연한 것이지만 왠지 타임머신 같기도 하다. 나중에 돌아올 때를 생각해보면 하루를 버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당장은 땡잡는 기분이다.


 지금은 아침에 일어난 지 10시간 정도가 지난 시점이다. 또 비행기에서 13시간 정도 있게 될 것이고, 도착하면 아침이니 또 14시간 이상을 깨어있게 될 것이다. 자칫하다간 40시간동안 낮이 될 수도 있다.  비행기에 안에서 잘 자지 않으면, 여행 첫날 하루 종일 골골거릴 게 불 보듯 뻔하다. 어떻게든 비행기에서 6시간 이상 숙면을 취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이러한 생각에 이르자 이번 비행의 목표가 명확히 정해졌다. 잘 먹고 잘 자기가 바로 그것이다.


 서울과 도쿄 사이에서 한번, 도쿄를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한번 기내식이 나온다. 비행기에서 잘 사육되고 있다. 잠자는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 위스키도 한잔 한다. 잠이 잘 안 올 것을 예상해서 한 가지 생각을 해낸다. 지금은 밤이라고 자기 최면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비행기를 타자마자 손목시계를 LA 시간으로 맞춰 놓고, 지금은 밤이라고 계속 생각을 했다. 영화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잠을 청하는 데, 신기하게도 이런 생각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밤이라고 생각을 하며 안대를 하고 잠이 들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난 듯 하여 슬며시 잠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시계를 보니 왠 걸, 대여섯 시간이나 지난 것이다. 믿기질 않아서 시계를 몇 번을 다시 봐도 정말이다. 거짓말처럼 시간이 지나간 것이다. 오늘의 비행 임무는 절반 이상 성공이다. 시계 요법이 효과가 있는 걸까? 잠시 후면  LA 도착이라는 생각에 더 이상은 잠이 안 온다. 두 달 동안 기다렸던 시간이 이제 시작된다.


 장시간의 비행이 끝나고 드디어 LA에 도착했다. 이제 익숙한 한국말이 나오는 대한항공과는 작별이다. 이제부터는 모든 것에서 미국식 문화에 부딪혀야 한다. 미국 경험의 첫 번째, 까다롭기로 소문난 입국 심사이다. 잘못한 것이 아무 것도 없어도 괜히 긴장되게 만든다. 입국 심사에서 잠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세관 신고서 때문이다. 세관 신고서는 보통 가족당 하나만 쓰며, 출입국 심사도 같이 받아야 한다고 한다. 아내와 나는 심사를 받기위해 각각 따로 심사관 앞에 섰다. 지문입력과 사진촬영이 끝나자  세관신고서가 없는 아내에게 왜 작성을 안했냐고 묻는다. 다른 쪽에서 심사를 받고 있던 내 쪽을 가리키며 가족이 작성했다고 말하니, 아내와 나를 담당하던 각각의 심사관들 둘이서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는, 다음부터는 함께 심사를 받으라는 조언과 함께 통과시켜 주었다. 다행이다. 최근들어 입국 심사가 무척 까다로와졌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2차 심사로 보내져서 여행일정이 잘못되면 어쩌나 하고 살짝 불안했던 마음이 그제서야 한 숨 놓인다. 최근 들어 미국 내에 성매매와 관련해서 한국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이 생겼고, 그 때문에 간혹 젊은 여성 여행객들이 곤욕을 치른다고 한다. 이유 없이 2차 심사로 보내져서 몇 시간씩 대기를 했다는 여행 후기가 종종 올라온다. 문제가 뭐냐고 항의를 하면 태연하게 No Problem 이라고 답하며, 허비한 시간에 대해서는 일말의 미안함도 없다고 한다. 미국을 방문하는 많은 여행객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이다. 앞선 여행객의 행동이 뒤따르는 여행객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내 행동 하나하나가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라는 책임감을 느낀다. 

 

  방금 통과한 입국 심사대의 줄은 생각보다 짧았다. 입국 심사대에 배치돼 있는 직원들의 수가 지금껏 여행, 출장을 다닌 중에 가장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개념 공항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내 기대는 금새 깨진다.  입국 심사대의 줄만 짧았지, 수하물을 찾은 후 나갈 때 통과해야 하는 세관 신고 줄은 그 끝이 보이질 않는다. 4개 정도의 긴 줄이 공항의 내부를 휘휘 감아 돌아 또아리를 틀고 있다. 단 4명 정도의 직원이 검사를 하는 것 같다. LA공항의 좋았던 첫 느낌이 무색하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부족한 점들이 금새 들통나고 만다. 30줄로 들어온 사람들이 단 4줄에 모이니 줄이 길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개념공항과의 조우는 다음으로 미룬다. 한참을 기다린 후 세관신고서를 보여주었다. 음식물 적는 란에 3분카레와 햇반을 적은 때문인지 정밀 검색대로 보내진다. 정밀 검색대 담당자인것으로 보이는 몇몇이 어설프긴 해도 한국어로 김치, 불고기 등등의 단어를 대며 그런 음식들을 가져왔냐며, 흑인들 특유의 건들거림으로 익살스러우면서도 호의적인 태도로 물어본다. LA에 한인이 많아서 그런지 외국인들도 한국 음식을 잘 아는 것 같다. 친절한 어투임에도 긴장이 되서인지 제대로 답도 못하고 ‘right’만 조그맣게 대꾸한다. 다행히도 간단히 x-ray 검색대를 통과한 후 무사히 밖을 나갈 수 있었다.  LA의 공기가 웰컴 하며 우리를 반긴다.

 

 셔틀 승강장에 도착 하자마자 타야할 셔틀버스가 막 출발한다. 대기 시간을 꽉 채우고서야 다시 나타난 셔틀을 타고 DeluxeRentACar로 향한다. Expedia.com에서 최저가로 예약한 렌터카 업체이다. 렌터카를 타자 큰 바구니에 달러가 꽤 많이 들어있다. 팁 바구니이구나 하는 생각에 여기가 미국임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달러를 넣어달라는 무언의 시위이다. 한국에서와는 다른 문화라도 미국에 왔으니 미국법을 따르기로 한다. 1달러를 놓아 둔다. 예약을 미리 했기 때문에 렌트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렌터카 수속이마무리 되고 금액을 확인하니  예약한 금액보다 거의 2배나 많은 금액이 나온 것이다. 알고 보니 인터넷 예약금액은 보험료가 빠진 금액이라고 한다. 내가 정확히 알아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인터넷으로 엄청 싼 업체를 알아냈다고 좋아했었는데, 그냥 다른 렌터카 업체와 가격은 똑같아졌다. 게다가 희망했던 차종인 어코드는 없고, 같은 급의 Dodge Avanger만 있다고 한다. 없을 수도 있다는 안내가 미리 있었기 때문에 이또한 어쩔 수 없다. 어코드를 원하니 준비 해달라고 미리 메일도 보냈었는데, 그냥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 야속하다. 가격도 예상보다 올라간 데다가 차종도 원하는 차를 받지 못하고 나니, 차라리 좀 더 큰 업체에 예약할 걸 하며 후회가 된다. 내가 결정한 사항들인데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하지만 약간은 김새는 기분인건 어쩔 수 없다. 렌터카 업체의 대응도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이런 것 때문에 여행이 재미없어지면 억울하지 하는 마음을 먹고 기분 좋게 출발을 한다. 초행길인 데다가 처음 운전하는 차를 탔고 미국이라는 설렘까지 더해지니 운전하는 데 긴장이 많이 된다. 하지만 테니시주 멤피스에서 운전을 해본 경력이 총 7일이나 되는 내가 바로 적응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미리 중고 제품으로 준비를 해 간 Garmin 네비를 장착하고 계획했던 대로 첫날의 첫번째 목적지인 Monterey를 향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부터 시작된다. 목적지의 주소를 입력하려고 Where to메뉴의 Address항목에 주소를 입력하려는 데,  Address를 클릭하자 No Map Data라는 오류 메시지가 나오는 것이다. 몇번을 해봐도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Point of Interest의 모든 메뉴도 같은 오류 메시지가 나오는 것이다. 1년 전 출장에서 같은 종류의 네비를 사용해 본 경험이 있어서 네비 사용법은 잘 알고 있었다. 확실히 지금 증상은 정상이 아님에 틀림이 없다. 네비게이션를 산 후로 잘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Recently Search 항목만을 확인해 보았었다. 잘 된다고 생각하고 더이상 검사를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좀 더 확인해볼 껄 하며 지금 와서 후회해 봐야 이미 한참을 늦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주소로 검색해 볼 생각을 왜 못했을까. 경비절감을 위해 열심히 알아봐서 준비한 네비게이션이지만, 지금은 아무런 검색도 되지 않는 쓸모없는 네모상자만이 내 손에 들려 있는 것이다. 정말 앞이 캄캄해진다. 타지로 여행을 왔고, 익숙치 않은 도로라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데 네비까지 말썽이니 정말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검색메뉴는 작동한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동작하는 기능이다. 최근 검색 메뉴에 이전 사용자가 사용했던 항목인 Monterey가 있어 일단은 그곳을 찍고 가기로 한다. 그런데 네비의 오동작은 검색이 안되는 것 뿐만이 아닌 것이다. 네비는 자꾸 자기 위치를 못잡고 지도상의 엉뚱한 곳에서 계속 헤멘다. 그러다 보니 갈림길이 나오면 여지 없이 놓치게 된다. 또 엎친데 덮친 격으로 5분이 멀다하고 혼자 꺼진다. 한 번 꺼지고 나면 한동안 켜지지도 않는다. 심한 고장 증세다. 도저히 이 네비로는 어디도 찾아갈 수 없을 정도다. LA를 빠져나오기 위해 표지판을 집중해서 봐야만 했다.


 고속도로에 진입을 하고 나니 잠시동안이지만 마음이 좀 놓인다. 앞으로 수백킬로동안 직진만 하면 되니 길찾기의 긴장감에서는 당분간 해방이다. 그래도 마음 속은 복잡하다. 고장난 네비게이션을 샀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하고 만다. 조금이라도 여행경비를 줄이려고 많이 알아본다고 알아봐서 중고제품을 구입한 건데, 계획대로 되질 않고 고생하게 됐으니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고작 10만원 때문에 공들여 준비한 여행을 망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까짓거 지나가다 만나는 상점에서 하나 사면 그만이라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좀 놓인다. 이런 때일 수록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덜 힘들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내 정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재가 동작하는 것이다. 여행이란 것이 원래 예상과 다른 상황들을 만나고 그것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니 마음이 좀 편해진다. 이런 상황일 수록 아내와 함께 으쌰으쌰 하며 잘 해쳐나가다 보면, 앞으로 살면서 만나게 될 많은 어려움들이 있더라도 더 성숙한 자세로 즐겁게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위안한다. 정말 여행이란 것은 예측 불가능의 연속이라는 것을 제대로 체험하는 중이다.


 Monterey로 가는 길의 첫 번째 갈림길에 다다른다. 이 순간에도 네비게이션은 계속 자기 위치를 놓친다. 그 때문에 갈림길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어, 갈림길을 놓치고 만다. 그러니 줄어야 할 거리가 줄지 않고 늘어난다. 네비는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렌터카업체에서 가져온 지도를 가지고 길을 찾아본다.  지도보기에 서툰 데에다 지도가 상세하지 않아서 이중으로 힘이 든다. 또 네비게이션이 추천해 주지 않는 길이어서  그런지, 내륙과 해안 사이의 산맥을 넘을 때는 구불구불 험한 길로 넘어가야만 했다. 해안 쪽 도로로 넘어가는 길이 3군데 정도 있었는데 어느 길이 추천할만한 지 몰라 아무데로 갔더니 그런  모양이다. 방향이 맞아서 방향을 틀었는데 가다보니 첩첩 산중이었던 것이다. 잔뜩 긴장하고 운전을 해서 겨우 산을 넘어 평탄한 지형에 도착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산맥을 넘기 위해서 가야할 모든 길이 이렇게 구불구불한 첩첩산중은 아니란 것이다. 나중에 다시 돌아올 때에도 산맥을 넘어야 했지만 Gilloy쪽을 통과해 가니 아주 완만하고 평탄한 길로 편안히 통과할 수 있었다.


 산을 넘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말았다. Monterey에 3시 이전에 도착할 계획이었는 데 벌써 6시가 넘어가고 있다. 곧 있으면 해도 질 텐데 말이다. 아쉽지만 몬터레이 일정은 포기하기로 결정한다. 사실 너무 오랫동안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해서 몸도 몹시 힘들어 일정대로 강행하기에는 너무 힘이 든다. 비행기에서 잠 잔 걸 제외하면 침대에서 일어난 지 30시간 정도가 지났으니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는 것도 기적이다. 다시 긴장을 바짝 하고 곧바로 샌프란시스코로 향한다.


 새로운 목표는 미리 예약해둔 Mission Inn에 도착하는 것이다. 네비게이션 없이는 불가능할 텐데 어떻게 길을 찾을까 하며 고심하던 중, 달리는 도로 오른쪽으로 BestBuy 간판이 스쳐 지나간다. BestBuy에 가면 분명 네비게이션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돈은 좀 아깝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해 바로 다음 갈림길에서 빠져나와 방금 본 BestBuy로 향한다. 그런데 막상 찾으려니 도무지 못찾겠는 것이다. 동네를 몇바퀴를 돌며 찾고 있음에도 결국 찾지 못한다. 네비게이션 없이 눈앞에 지나간 상점도 못찾는데 잘 보이지도 않을 숙소인 Inn을 찾겠다는 건 정말 불가능일 것이다. 더욱 더 네비를 사야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한참을 더 헤메고 난 후에야 겨우 BestBuy를 찾았다. 이젠 됐구나 하는 마음에 한 숨 놓이다. 이제 네비만 사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건 시간문제다.


 BestBuy상점에 들어가면서 당연히 A/S는 안될 거라고 생각했던 나와는 달리, A/S가 될 지도 모르지 않느냐는 아내의 생각에 고객센터로 향한다. 아내도 안되면 그만이란 생각으로 고객센터에서 증상 등을 설명하고 여기서 산 건 아니지만 A/S가 가능하겠는지를 묻는다. 한참을 기다리니 담당 직원이 웃으며 나온다. 혹시???!!!.....  네비게이션이 간단히 수리가 된 것이다. 장치를 Reset하고 나니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S/W가 좀 꼬였던 모양이다. 다시 고장날 지 모르기 때문에 Reset하는 방법을 배워둔다. 거의 20만원 이상을 지출할 뻔한 것을 아낀 것이다. 아내가 자기가 기지를 발휘해서 잘 된거라며 공치사한다. 내가 늘 공치사를 하니까 금새 배워서 써먹는다. 그래도 인정할 껀 해야지. 덕분에 잘 해결이 되어 정말 다행이다. 우리 둘이면 못할 게 없겠다는 생각에 다시 자신감이 넘친다. 기쁜 마음에 밖으로 나오면서 어떻게 사례를 해야 하나를 생각하다가 멋대가리 없이 그냥 땡큐만를 외치며 차에 오른다. 작은 케익이라도 하나 건네주고 나올 걸 하며 그냥 온 것을 살짝 후회한다.


 네비게이션이 정상이 되었으니 이제 길찾는 건 일도 아니다. 다만 긴장이 풀려서인지 도저히 운전을 못할 정도로 피로가 몰려온다. 운전대를 아내에게 맡기고 나니, 눈을 뜨고 잠시도 버티기가 힘들다. 2시간 정도를 깜빡 깜빡 졸다보니 드디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이다. 그리고 한 대로변에 우리가 첫번째로 묵을 숙소인 Mission Inn에 도착을 한다. 엄청 후져 보이고 느린 조그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숙소로 들어간다. 이렇게 후진 Inn도 있구나 싶다. 그래도 나름 깔끔해 보이기도 하고 대도시임에도 가격이 나름 저렴해서 선택한 곳이니 참을 수 있다. 


 숙소를 찾아 들어와서 다음 스케쥴을 짜보려고 시간을 확인하니 8시 30분을 막 지나고 있다. 잠깐 나가서 샌프란시스코의 야경도 구경하고 시내 구경을 해도 될 시간이었지만, 긴장도 풀리고 이제는 살았다는 안도감이 드니 피로감이 마구 쏟아진다. 첫날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드라이브 나가기로 했던 계획도 취소하기로 한다.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자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첫날 관광은 모두 취소하고 한거라고는 LA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운전해서 온 것 밖에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동안 정말 많은 경험을 했다. 눈을 감으니 오늘 하루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네비게이션이 고장이라는 걸 알게 됐던 일,  길을 못찾아 헤메면서 불안해 했던 일, 아내 덕에 네비게이션을 고치고 기뻐했던 일 등 하루종일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을 다 이겨내고 하루를 무사히 마친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아까 점심때만 해도 오늘의 위기를 과연 넘길 수 있을까 하며 걱정했었는데, 다 해결된 지금 생각을 해 보면 괜한 걱정을 하고 불안해 한 것이다. 앞으로의 여행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 지 모르지만 아내와 나 둘이 힘을 합치면 이겨나가지 못 할 어려움은 없을 것이란 자신감이 든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을 얻은 것이다.

 

 둘째날 아침이 밝았다. 기절했다가 깨어난 기분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이 든다. 정말 피곤했었나 보다. 그래도 먼 여행지까지 와서 늦잠을 자고 싶지는 않다. 그냥 집에 있을 때에도 주말에 일찍 일어나면 하루동안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다는 걸 깨닫곤 하는 데, 멀리까지 놀러왔으니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많은 걸 보고 싶다. 젊으니까 할 수 있는 것들을 누리는 것이다. 일어나서 씻고 나오니 아내도 잠을 깨기 힘들었는지 겨우 일어난다. 그리고는 자는 동안 침대가 마음에 들었는지 숙소가 생각보다 청결한 것 같다며 좋다고 한다. 앞으로 다닐 숙소 중에 제일 깨끗한 건 아닐까 하며 침대에 대해 만족감을 드러낸다. 나도 전날 밤에는 몰랐는데 다시 살펴보니 숙소가 생각보다 괜찮다. 숙소의 첫 느낌은 낡은 시설과 꽤 오래됀 특이한 형태의 엘리베이터 때문에 전체적으로 깨끗하지 않아보였는데, 다시 보니 일단 침대보 관리는 잘 하는 것 같다. 벼룩도 없고 말이다.

 

 창밖에서 사람 소리, 자동차 소리가 평소보다 웅웅대며 퍼져서 들린다. 비가 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설마 하며 날씨를 확인하기 위해 창문을 열어보니 안개가 짙게 낀 채로 인상을 잔뜩 찌부리고 있다. 약하게 비가 내리고 있고 날씨도 쌀쌀한 게 여행하기에 결코 좋은 날씨는 아니다. 비오는 날은 잘 돌아다니지 않았는데 오늘은 예외로 하기로 한다. 아침을 제공하는 숙소여서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가는 길에 다시 만난 엘리베이터는 볼 수록 특이하다. 방안에 들어가듯 여닫이 문을 열면 그 안에 엘리베이터 문이 또 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면 그 문을 또 밀어서 열어야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 두 명과 가방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비좁다. 또 한 층을 내려가는 데에도 한참 걸린다. 아마도 고층건물이 잘 없는 미국에서 저전력으로도 저렴하게 엘리베이터를 구동시키려는 시스템일 거라 짐작한다. 카드키가 있어야 엘리베이터 문을 열 수 있어 보안의 효과도 있을 것 같아 안심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Mission Inn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이 엘리베이터가 가장 먼저 생각날 만큼 인상에 남는다.


 제공하는 아침식사는 좋은편은 아니었지만 건물 외관의 허름함에 비해서는 괜찮은 편이다. 씨리얼에 우유, 커피, 우유식빵과 호밀식빵 그리고 땅콩쨈이 전부다. 하지만 준비된 땅콩쨈이 정말 맛있다. 안에 땅콩 부신 것도 들어 있는 것이 예사 땅콩쨈이 아니다. 계란스크램블이 혹시 있지 않을까 하며 살짝 기대했지만 찾을 수 없다. 그래도 이 정도면 뭐 아쉬운 대로 만족스럽다. 그리고 비록 빵이지만 많이 먹으니 생각보다 든든하다. 날씨도 추운데 몸이 열을 내야 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많이 먹는다. 여행지에서는 잘 먹어줘야 한다.


 드디어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출발이다. 곧 있으면 무엇이 샌프란시스코를 이렇게 유명하게 만들었는지 이제 내 두 눈으로 확인 해볼 수 있게 된다. 내가 바로 여기 샌프란시스코에 있다니, 마음껏 두 눈을 호강시켜 주리라 다짐한다. 오늘은 운전을 많이 안해도 되기 때문에 운전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점은 큰 위안이다. 어제 운전하면서 무척 힘들었었기 때문에 운전 안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숙소를 출발해 10분정도 나가니 하니 벌서 유니온 스퀘어 광장 근처에 도착한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길가에 동전 넣는 주차장이 모두 무료다. 하지만 번화가 쪽이라서 그런지 아침시간임에도 주차 할만한 공간을 찾을 수가 없다. 벌써 시내를 몇바퀴째 도는지 모르겠다. 결국 좀 덜 번화한 곳으로 가서 겨우 주차를 한다.


 차를 타고 유니온스퀘어광장 주변 백화점 거리의 중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샌프란시스코에는 언덕이 참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 언덕의 도시이다. 그 언덕에도 길 가에는 모두 차들이 주차가 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언덕에 주차한 차들의 바퀴의 방향이다. 차가 혹시나 미끄러질 경우를 대비해서 브레이크가 풀리더라도 모두 안쪽 방향으로 미끄러지도록 바퀴를 돌려 놓은 것이다. 예외 없이 모든 차량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언덕이 많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누구나 당연히 알고 있는 규칙인 것 같다.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나니 나중에 다시 찾아올 방법이 필요하다. 주변에 큰 랜드마크가 될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택시를 타더라도 찾아오기가 좋은 데 그런 건물이 없다. 리셋을 해 새생명으로 태어난 네비게이션이 한 몫을 한다. 현재 위치를 지정해서 저장해 놓으면 어디서든 찾아오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차는 이용하지 않고 버스나 케이블카를 이용해서 돌아다니기로 한다. 

 

MUNI pass 1일권을 사면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케이블카를 비롯해서 MUNI Train및 MUNI 버스까지 무제한으로 이용 할 수 있다. 머무르는 날 수대로 1일짜리, 3일짜리 등 선택이 가능하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pass를 구입하는 것도 좋다. 이제 pass를 살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찾아가는 일이 또 만만치 않다. 차를 주차한 곳에서 좀 걸으니 샌프란시스코 시청 근처에 Bart전철역이 있다. 물어물어 알아보니 한정거장 더 가면 나오는 유니온 스퀘어 역에 여행자 센터가 있고, 거기에서 pass를 살 수 있다고 한다. 보슬비를 맞으며 한참을 걷는데 바람까지 부니 앞을 똑바로 보기가 어렵다. 여행자 센터에 도착해서 pass를 구매한 뒤 밖으로 나가니 원래 찾아오려고 생각했던 케이블카 종점 앞인 것이다. 역시 제대로 찾아왔다. 궂은 날씨임에도 관광객이 많아서 케이블카 정류소에는 사람이 많아 줄을 길게 서 있다. 잠시 기다리자 유명한 케이블카가 아스팔트 위에 놓인 철로를 따라 다가온다. 이국적인 풍경에 마음속으로 환호한다. 눈앞의 모습들을 보며 놓치지 않고 장면 장면을 사진기에 담는다. 역시 TV에서 본 대로 케이블카의 U턴을 위해 케이블카를 턴테이블의 원판에 올려놓고 사람의 힘으로 직접 방행을 돌린다. 케이블카 교대식이다.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티비를 통해 익숙해진 때문인지 내가 여기 살며 늘 봐왔던 것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비록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우산을 쓰기가 쉽지 않다. 주변의 사람들이 쓰고 가던 우산이 뒤집히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연출된다. 우리도 그냥 우산은 접은 채 모자를 쓰고 다니기로 한다. 비가 오니 또 한가지 고민이 생긴다. 사진기를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이다. 그동안 애지중지 한 카메라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예외로 하기로 한다. 여행다니면서 사진 찍는 즐거움을 비때문에 포기 할 순 없다.  물론 여행 후에도 사진은 많은 즐거움을 준다. 이참에 사진기의 방수성능을 시험해 보기로 하며 그냥 꺼내놓고 사진을 찍어댄다. 하지만 비가 좀 많이 올 때는 사진을 찍고난 후 곧바로 품안에 넣어서 비로부터  보호해야 했다.


피셔맨스워프로 향하는 케이블카를 탄다. 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바깥쪽 좌석에 앉는다. 달릴때 바깥쪽 기둥에 매달려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어나려고 하니 기사가 제지한다.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티비에서는 하용했지만 원래는 기둥에 매달려 가는 건 안되는가보다 하며 자리에 앉는데, 한쌍의 잘 차려 입은 멋쟁이 커플이 올라타 기둥에 매달린다. 자리가 없을 때에 탄 사람만 매달려 갈 수 있나 보다. 이 사람들 케이블카 기둥에 매달려 비를 다 맞아가며 좋다며 웃는다. 나도 매달려 갔으면 하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 비에 펑 젖은 그 사람들을 보니 그냥 앉아서 가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케이블카를 타고 언덕을 올라가고 내리막을 달리고 나니 어느덧 피셔맨스워프에 도착한다.


 피셔맨스워프를 돌아다니며 이런 저런 먹거리들을 둘러본다. 바닷가라서 그런지 해물 종류를 많이 판다. 특히 게요리가 눈에 많이 띈다. 어딜 가도 먹거리가 풍성하지만 그리 싸지 않고 별로 땡기지 않아 또 다른 유명한 장소인 피어39로 향한다. 피어39는 물개가 부둣가 바로 앞에 모여 있기로 유명한 곳이다.  혹시 비가 와서 없으면 어쩌나 싶다. 아마도 물게가 물 밖으로  나와서 쉬는 것은 햇뼡을 쬐기 위해서일 것 같아 오늘은 해가 없으니 물게도 없을 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비가 와도 물개는 물 밖으로 올라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주는 먹이 때문인지 모두 사람 가까운 쪽에 모두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러면서도 자존심은 있는 지 새침하게 관광객들을 모른척을 하며 딴청을 한다.


 물개와의 상견례도 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니 춥고 지친다. 어딘가 따뜻한 곳에 들어가 앉아 쉬고 싶단 생각이다. 들어갈만한 장소를 찾던 중 부딘 베이커리를 발견한다. 빵으로 동물들을 만들어 놓고 전시를 해서 유명한 곳이다. 처음엔 음식을 주문할 생각은 없었는데 비를 맞으며 돌아다녀서 얼었던 몸이 녹으니까 노곤해져서 나가기가 싫어진다. 몸 좀 녹이고 쉬어가자는 생각에 클램차우더를 하나 주문한다. 클램차우더는 빵 속을 파내고 그 안에 게살 수프를 넣어 나오는 음식이다. 추위를 느끼던 차에 따뜻한 수프가 몸속에 들어오니까 기분이 좋아져서 계속 눌러앉고 싶다. 하나만 시켜서 둘이 나눠먹었음에도 둘이 하나를 겨우 먹는다.  주위를 둘러 보니 두개를 시킨 커플들은 거의 1개 가까운 양을 남긴다. 수프도 그렇고 빵도 좀 짭짤하다. 미국음식 대부분이 좀 짠 것 같다. 그래도 직접 반죽을 하고 이곳만의 효모를 넣어 발효해 만드는 빵이라는 데 건강에는 좋을 것 같다. 이게 미국식 빵맛일 거라 생각하며 역설적으로 미국에서 햄버거가 왜 그렇게 인기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부딘베이커리의 빵은 이방인인 내게는 잘 맞지 않았지만 미국 햄버거는 정말 감탄할 만큼 맛있었기 때문이다.


기운을 좀 회복하고 이번엔 기라델리 스퀘어 광장으로 향한다. 지도를 하도 많이 봐서인지 찾아가는 게 어렵지 않다.  걷는 중 계속 비가 오니 금방 지친다. 이제 제법 빗줄기도 굵어져서 우산 없이는 다닐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미 신발도 다 젖어서 우걱우걱 소리가 난다.  기라델리 스퀘어에 들어가자 생각지도 않던 시식용 초콜렛을 나눠준다. 세계3대 초콜릿이라는 기대감이 컸는지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특히 안에 시럽처럼 첨가물이 든 초콜릿은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래도 초콜릿 시식은 언제나 즐겁다. 게다가 초콜릿샵, 초콜렛 카페 등 초콜릿에 관한 한 끝판 왕까지 온 것이라는 생각에 만족스럽다. 구경을 한참 하고 밖으로 나오니 바로 근처에 부에나비스타 카페가 보인다.  아이리쉬커피로 유명한 곳이다. 이 곳도 꼭 가봐야지 하고 찜했었던 곳이라서 들어갈까 하고 잠시 생각을 했지만, 배가 아직도 빵빵해서 무언가를 더 먹고 싶은 생각이 없음을 깨닫는다.  무언가를 먹고 싶지 않은 데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다.


 다음 행선지인 롬바르드 언덕으로 가는 케이블카로 향한다. 이미 몸이 얼었다 녹았다를 몇번 반복하고 나니 금방 밖으로 나왔는 데 벌써 실내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와중에도 우산을 쓰고 비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기다려서야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다. 케이블카에는 역시 외국인들이 많다. 다양한 나라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여행을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이 샌프란시스코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었는지 잠시 생각을 해본다. 케이블카만 하더라도 이미 오래전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을 시민들의 의지 덕에 지금까지 운행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훌륭한 시스템과 시민들이 만나 현재의 관광명소가 만들어 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생각도 잠시 주위에 독일어를 사용하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웃고 떠들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들은 날씨가 춥건 비바람이 불건 상관이 없어 보인다. 이 즐거운 기운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이들은 알까? 내 기분까지 다 즐거워짐을 느낀다. 기쁨은 나누면 두배가 된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나도 다른 이들에게 좋은 기운을 줄 수 있는 여행자가 되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여행의 좋은 본보기로 삼아야 겠다. 

 

 사진을 통해 처음 알게 된 후로 꼭 가봐야 할 곳 영순위로 생각했던 곳이 있다. 지금 막 도착한 롬바르드 언덕이다. 케이블 카의 사람들이 다 나와 같은 곳에서 내릴겠지 하는 생각에 주의깊게 밖을 살피지 않았었는데,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내리지 않아 하마터면 내리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릴 뻔했다. 많이 알려지는 않은 곳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눈앞에 지그재그 꽃길이 펼쳐진다.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도로의 꼭대기에 서 있다. 작은 언덕이지만 가파른 경사를 가지고 있어 길을 지그재그로 만들어 놓은 곳이다. 지그재그길 옆에는 고급 주택들이 경사를 따라 지어져 있고, 지그재그길 사이사이의 공간에 예쁜 꽃나무들로 장식이 되어 있다. 차가 다니는 도로라기 보다는 어느 동화에 나오는 정원에 와 있는 것 같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 내 눈 앞에 펼쳐진 것들을 카메라의 프레임 속에 담는다.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감상도 잠시 지나자 어디 실내에 들어갈 만한 곳이 없나를 두리번 거린다. 날씨 탓에 이미 몇 시간 전부터 지친 상태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면 모르겠지만 아내와 함께이기 때문에 이상 더 이상 걸어서 돌아다니는 건 무리이다. 페이스 조절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힘든 도보는 잠시 멈추고 렌터카를 주차해 놓은 곳으로 가기로 한다.


 차가 있는 곳으로 가는 방법 중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온 길을 그대로 돌아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좀 오래 걸리긴 하지만 제일 쉬운 길인 이 방법을 택하기로 한다. 뮤니 패스 1일권이 있는 우리에겐 교통비에 대한 부담도 없다. 좀 전에 롬바르드 길에 내린 방향의 반대 편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기라델리 스퀘어로 향한다. 기라델리 스퀘어에 내리니 그냥 지나쳐 버려 좀 아쉬웠던  부에나비스타 카페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아까는 초콜렛을 먹은 후여서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추위에 지친 지금은 얼른 들어가 앉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카페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사람이 많아 겨우 빠 쪽으로 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골라 앉은 건 아니지만 빠에 앉으니 바로 앞에서  커피 만드는 과정을 구경 할 수 있어서 좋다. 우리는 알콜이 들어간 아이리쉬 커피와 알콜이 들어가지 않은 커피 한 잔씩을 주문했다. 바텐더는 두명인데 한 명은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백발의 멋쟁이 할아버지이고,  다른 한명은 한 인상 하는 뚱보이다. 커피 만드는 걸 구경 하고 있으니 앞에 있는 뚱보 바텐더가 어찌나 터프한지 커피 제조 과정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포스를 팍팍 뿜어낸다. 주전자를 기울여 일렬로 늘어선 잔들 위로 휘리릭 지나가며 커피를 들이 붓듯이 따른다. 좀 과장하면 잔으로 들어가는 커피가 반, 바닥에 흘리는 커피가 반이다. 술도 커피를 따를 때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주문한 한잔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이리쉬 커피인지 한 잔만 제외하고 나머지 잔에 술을 들이 붓는다. 그렇게 들이부으니 가득 들어있던 술병은 순식간에 빈병이 되고 만다. 럼주의 한 종류라는 데 저렇게 부어대는 걸 보면 틀림없이 저렴한 술일 것이다. 잠시 후 우유 크림을 첨가한 완성된 부에나비스타 커피 2잔이 우리 앞에 놓인다. 바텐더의 쇼를 보며 한층 높아진 기대감을 가지고 커피 한모금을 목으로 넘기는데, 윽!!  이건 커피가 아니다. 독한 럼주를 들이 키는 것과 똑같다. 이 커피 나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다. 커피가 아니라 커피향 술인 것이다. 이게 진짜 아이리쉬 커피의 맛이구나 하며 커피를 다 비울 때 까지 인상을 팍팍 쓰며 겨우 다 마셨다. 진짜 아이리쉬 커피의 맛을 하나 배워간다.


 아이리쉬 커피의 맛을 보니 내 머리 속에 언제부터인가 갖고 있게 된 아일랜드에 대한 이미지가 이해되는 것 같다. 예전에 어느 영화에서 거짓말 탐지기따위는 아일랜드인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대사가 있었다. 철저하리만큼 독한 놈들이라는 뜻이었다. 아일랜드는 700년이 넘는 오랜 기간동안 식민 지배 속에서 핍박을 견뎌내왔던 역사가 있으며, 미국 이민 생활 또한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아일랜드인들은 그 안에서 살아남아 오면서 분명 그들 특유의 독한 유전자가 이어져 내려왔을 것이다. 독하게 살아온 이 사람들이 마신 커피에서 이들의 역사가 느껴진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취하지 않고 어찌 이 현실을 견뎌낼 수 있겠냐며 잠시도 술잔을 놓지 않겠다던 한 인물의 대사와 묘하게 겹쳐진다. 나는 지금, 카페에서 단지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도 많은 감상에 젖게 만들어 주는 도시,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카페에서 나와 피셔맨스워프로 이동해 다시 유니온 스퀘어 방향으로 케이블카를 탄다. 잠시 유니온 스퀘어의 쇼핑센터를 둘러보고 나니 힘이 다 빠진 상태라 더 이상 걷지도 못할 지경이다. 주차한 곳까지 걸으려던 생각은 접고 버스를 탄다. 그냥 방향만 보고 탄 것이지 길을 찾아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믿는 구석이 다 있기 때문이다. 여행 첫날 우여곡절 참 많았던 귀하신 네비게이션께서 이번에는 힘을 제대로 발휘해 주신다. 네비게이션을 잘 보고 있다가 주차한 곳과 방향이 멀어지면 바로 내리면 된다는 계산이 머리 속에 깔려있다. 다행히 예상이 적중해서 버스가 주차한 곳 거의 근처까지 가준다. 운이 좋다.


 반나절동안 빗속에서 돌아다니다가 차를 만나니 더할 나위 없이 반갑다. 드디어 비를 피할 수 있는 편안한 보호막이 생겼다. 보고막인 차를 타고 금문교로 향한다. 금문교를 건너 편 Vista Point를 향하면서도 오늘 안개가 끼어서 금문교가 안보이면 어쩌지 하며 살짝 걱정이 된다. 하지만 도착해서 금문교 방향을 돌아보니 걱정했던 것은 모두 기우였다. 풍경이 아주 장관이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안개에 쌓인 금문교의 모습이 자못 신비롭게 느껴질 정도이다. 수많은 사진에서 보았던 맑은 날의 금문교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이름과는 달리 금문교의의 색은 빨간 색이었다. 정확히는 international orange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그냥 빨간 색이었다.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하고 있는데 덩치가 산만한 흑인이 다가오며 머라 머라 말을 건다. 약간 겁도 나고 해서 경계하며 얘기를 듣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이 곳 샌프란시스코로 놀러왔는데 카메라를 잃어버려서 사진을 한장도 남기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좀 찍어달라는 부탁이었다. 사진을 찍어주는데 표정이며 포즈가 아주 유쾌하다. 카메라를 잃어버리고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남은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메일 주소를 알려주고는 잊어버리면 안된다며 신신당부를 하는 모습에서 절실함이 느껴진다. 프란시스라는 이 사람, 여행이 끝난 후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서 이메일을 받을 수 있었기를 바랜다.


 이번에는 뮤어우즈로 향한다. 소살리토 북서쪽에 위치한 공원인데 키가 100미터나 자라는 레드우드가 많이 있는 숲이라고 한다. 자동차로 지나가며 보이는 숲 초입의 도로변 마을들을 보니 자연과 더불어 사는 모습이 무척 예뻐보인다. 바로 근처에 이런 자연이 있는 걸 보며 정말 살기 좋은 곳이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난다. 좋다 좋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산길을 드라이브 하는데 갈수록 길이 좁아지고 더 구불구불 험해진다.  지금껏 다녀본 길 중 이렇게 가파르면서 구불구불하고 좁은 도로는 없었을 만큼 운전이 어렵다. 잔뜩 긴장을 하고 천천히 운전을 해서 간신히  찾아들어간 뮤어우즈, 정말 깊은 산중에 있다. 비가 막 그친 축축한 숲의 공기가 마치 원시림에 와 있는 느낌을 준다. 숲   향기는 언제 맡아도 기분 좋다. 하물며 이렇게 깊은 산인데 두말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생각보다 해가 빨리 지는 바람에 공원으로 들어가자 마자 어두워진다. 공원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이미 어두워져서 더 이상은 들어거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에 발걸음을 돌린다. 키가 100미터나 자라는 레드우드를 보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공원 초입밖에 둘러보지 못하는 바람에 그런 나무를 찾지는 못했다. 그래도 예사롭지 않은 숲인것만은 확실했다. 힘들게 찾아왔는데 별로 구경을 못해서 아쉬웠지만 여행에서 아쉬운거 한두개쯤 두고 오는 것도 있어야지 하며 위로한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저녁을 먹으러 소살리토에 잠시 들른다. 그런데 생각했던 Hamburgers가 이미 문을 닫아서 할 수 없이  다시 피셔맨즈워프 근방으로 차를 돌린다. 저녁이 되니 차가 많이 줄어서 주차하기는 수월했다. 무얼 먹을까 하며 돌아다니는 데 다른 곳에선 보지 못한 정말 특이한 장면들을 발견한다. 바로 걸인들의 구걸하는 모습이다. 낮에는 보이지 않았던 걸인들이 비가 개서인지 다들 길거리에 나와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걸인들이 구걸하는 게 뭐가 특이하다는 것이지 하고 의문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직접 보게 된다면 누구라도 특별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의 걸인들은 모두 자신만의 특이한 컨셉들을 가지고 구걸을 한다. 깡통을 앞에 두고 낚시대로 고기를 낚는 듯한 쇼를 하기도 하고, 마임 예술가처럼 동작을 하며 구걸을 하기도 한다. 햄버거 집에서 바로 앞에서는 햄버거 1개의 가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구걸을 하는 등 그 컨셉들도 다양하다. 마치 거리 공연을 하는 예술가들 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인상깊은 것이 있는데 걸인들이 모두 밝게 웃는 표정으로 즐거워 하며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도시를 다녀봤지만 이런 모습은 색다른 충격이다. 이 곳 에서는 거지들도 나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분명 기왕 구걸 하는거 좀 열심히 해보자 하는 마음을 먹은 것일 게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   거지들도 행복해하는 모습에서 불만 많았던 그 동안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오늘 저녁식사는 인앤아웃의 햄버거다. 벌써 미국에서 두번 째 먹는 인앤아웃의 버거는 참 맛이 좋다. 값도 싸고 재료도 신선해 보인다. 특히 양상치를 많이 넣어줘서 다른 햄버거에 비해 덜 느끼하고  맛있다. 고기도 냉장육만을 쓴다고 한다. 게다가 감자튀김도 신선해 보이고 맛있다. 아쉬웠던 점을 말해보라 하면 애니멀스타일 메뉴를 먹어보지 못했다는 점 정도다. 애니멀 스타일로 달라고 하면 뭐든 왕창 넣어서 준다는 얘기를 회사 동료인 수딥을 통해 듣고 갔는 데, 그 메뉴가 메뉴판에 나와있는 게 아니다보니 주문할 때에 정작 애니멀스타일이란 말을 기억을 못해서 그냥 일반 메뉴만 먹은 게 못내 좀 아쉽다. 아마 내가 먹은 햄버거보다 갑절은 맛있었을 게 분명하다. 내 입맛이 보증하니 한 번 믿어보시기 바란다.


 숙소에 들어와 잠시 이것 저것 좀 정리하다가 누워서 잠깐 눈을 감았다 뜨니 여행 세째날이 되어있다. 놀라운 체험은 계속된다. 오늘은 하루 종일 운전을 해야 하는 날이다. 힘든 날이 될 테니 아침을 든든히 먹는다. 빵이지만 많이 먹으니 배도 부르고 든든하다. 평소에는 밥 대신 빵을 먹는 일은 절대로 없지만 여행지에서는 빵만 먹는다고 해도 그다지 불만이 없다. 아무래도 난 주어진 환경형 인간인 것 간다. 2일동안 묵었던 미션인에서 체크 아웃을 하고 하늘을 본다. 샌프란시스코는 우리에게 처음으로 파랗고 맑은 하늘을 보여 준다. 오늘 우리는 떠나는데 조금만 일찍 보여주지 하는 생각에 야속하다. 여행자는 늘 아쉬움을 남기고 떠난다. 간혹 아닌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다. 다음을 기약하며 샌프란시스코를 떠난다.  

 

 자동차로 도착지인 라스베가스 까지 예상 소요 시간이 총 10시간이나 되는 대장정을 시작한다. 월요일 아침 출근 시간과 겹쳐서인지 차가 무척 많다. 샌프란시스코를 빠져나와 산호세까지 가는 내내 차가 많이 막힌다. 2시간 이상 정체가 계속돼 시간을 많이 지체하는 바람에 스탠포드에 들리려고 했던 계획은 생략하기로 한다. 계획했던 곳에 못가고 생락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여행이 생각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든걸 다 하려다 보면 여행이 아닌 노동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해 생략하는 것이다. 여행 초보인 우리는 이렇게 생략해도 이미 여행이 노동이 되어가고 있다. 여행을 마친 지금 생각해 보면 미국이란 곳을 옆에서 슬쩍 구경하고 왔다는 느낌이다. 좀 더 많은 것을 구경해야지 하는 욕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여행을 통해 또 하나를 배운다. 다음 미국 여행 때는 여행지에서 좀 더 체험하고 좀 더 즐길 수 있는 그런 여행을 할 것을 다짐한다. 

 

 예상 밖의 교통 체증을 만났지만 그 덕에 미국의 특이한 교통 시스템을 한가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상습 정체구간 도로들의 1차선에 위치한 카풀레인이다. 카풀을 하는 차만 통행하는 차선으로 우리나라의 버스 전용차로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다만 다른 것은 차에 2명만 타면 이 차선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1인 차량이 많으면 2인이상 이용 가능한 카풀레인 제도가 있을까 하며 미국에 대해 하나 더 알게 된다. 교통정체가 끝날때쯤에서야 카풀레인을 이용했는데 처음부터 빨리 눈치를 채고 카풀레인을 이용했으면 교통체증에 좀 덜 시달렸을 것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샌프란 시스코로 올 때 운전을 하며 힘든 코스였던 산맥을 넘는 길을 다시 가게 될 지 모른다는 게 좀 부담이 된다. 그런데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길인 Giloy에서 넘어가는 길로 가니 이틀 전의 구불거리던 산맥이 아닌, 그냥 야트막한 언덕만 통과하면 된다. 이틀 전에는 네비게이션이 고장나서 지도만 보고 오다보니 추천 도로가 아닌 곳으로 왔던 게 확실해진다. 길도 구불거리지 않는 데다, 아주 멋진 호수가 나와 경치도 멋지다. 샌 루이스 호수이다. 멋진 거대한 호수를 보니 그냥 지나칠 수 없다. Recreation Area 센터 표지판이 보여 바로 도로를 빠져나온다. 차를 세워놓고 보니 호수 반대편 끝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멀다. 그리고 황량해 보이는 주변에 나무라고는 이 곳 관리소 마당의 나무 몇 그루 뿐이다. 시야가 닿는 모든 거리의 산과 언덕에 한 그루의 나무도 없어 보인다. 온통 황금색 풀들로 색칠해 놓은 듯이 느껴진다. 이 황금색 산과 언덕으로 둘러쌓인 거대한 호수는 지금껏 보지 못한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 낸다. 관리소를 한 바퀴돌아보니 한 쪽 끝에 거대하게 놓인 댐이 보이고 이 호수의 역사를 전시한 전시관 같은 게 있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알고 보니 댐으로 물을 막아 만들어진 호수이다. 주변환경을 보면 원래부터 마을은 없었을 것 같아 우리나라처럼 댐 건설로 수몰된 마을에 대한 고민은 없었을 것 같다. 건조한 지방에서도 이렇게 물을 모아 거대한 농장에 물을 대는가보다. 

 

 휴식을 마치고 다시 출발해 5번도로로 들어간다. 지금부터는 길 신경 안쓰고 그냥 내달리기만 하면 된다. 다음 갈림길이 5~600킬로미터 후에나 나오기 때문이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직선도로가 펼쳐진다. 광활한 미국땅에 펼쳐진 도로를 체험 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운전의 피로함이 그나마 덜하다. 다만 렌터카의 크루즈 기능이 고장난 것이 못내 아쉽다. 크루즈 컨트롤의 필요성이 절실했지만 미리 확인하지 못한 내 잘못도 있었고 지금 다시 LA로 가서 차를 바꿔달라고 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냥 참는 수 밖에 없다. 한 가지를 배웠다. 렌터카 빌릴 때 크루즈 기능 체크는 필수이다. 창밖에 줄을 맞춰 재배되고 있는 나무가 있는 농장이 있다. 과실 나무들이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아마도 오렌지 농장인 것 같다. 사막처럼 풀도 잘 안나는 벌판에 물을 공급해서 이렇게 무언가를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는 모습이 놀랍다. 

 

 가고 가고 또 가고 그렇게 계속 가니 그래도 도착지까지의 거리가 줄어들긴 한다. 남은 거리가 절반 이상은 줄어 Bakersfield에 도착했다. LA-샌프란시스코 길과 LA-라스베가스 길의 교차점에 있는 도시이다. 간만에 만나는 나름 큰 도시다. 거리가 깔끔하고 주택들도 먼가 단정해 보이고 대저택같은 곳도 보인다. 잘 정돈되어 있고 한적한 느낌을 가진 이런 곳에서 한가로이 정원이나 가꾸며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잠시 쉬고 다시 또 출발이다. 여기서부터는 농장도 전혀 없다. 사막같은 기후는 5번 도로 주변과 비슷해 보이는데 이쪽 주변은 경작을 전혀 하지 않는 게 다르다. 벌판에 점박이처럼 죠슈아 나무들만 자라고 있다. 이 곳은 물을 끌어오기가 힘든 지역이기 때문일 것이란 추측을 한다. 또 가고 가고 끝없이 간다. 주변이 사막이긴 한데 사하라 사막같은 그런 모래만 있는 사막은 아니다. 사막에 바위산이 우뚝 솟아있는 곳도 있고 황량한 곳에 띄엄띄엄 죠수아 트리만이 자라는 지역도 있다. 어떤 곳은 산에 바늘을 빽빽하게 꼽아놓은 것 처럼 풍력발전소를 산 가득 세워놓은 곳도 보인다. 풍력 발전소도 스케일이 장난이 아닌데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 것도 없을 것 같던 사막에도 나름 갖가지 볼거리들이 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특이하고 이국적인 지형들이 신기한자 운전을 오래 했음에도 좀처럼 피로하질 않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아무리 신기한 풍경도 몇시간째 계속 펼쳐져 있으니 이내 익숙해지고 만다. 이제는 늘 봐왔던 것 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라스베가스를 가기 위해 통과하는 도로중 20km이상을 계속 오르막으로만 가는 길이 있다. 이런 곳에서는 도로의 표지판을 잘 봐야 한다. 에어컨을 끄라는 표지판이 나오면 에어컨은 왠만하면 끄고 달리는 게 좋다. 이런 곳에서는 자칫 자동차가 과열이 될 수 있으니 에어컨은 끄도록 권고하는 것이다. 덥더라도 창문을 열고 달리도록 하자. 자칫 잘못되서 차가 퍼지기라도 하면 사고처리를 하느라 남은 여행 전체의 일정이 꼬일 수도 있기 때문에 표지판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현명하다. 또 이 지역을 통과하면 이번에는 20km 넘게 내리막만이 펼쳐져 있는 지역이 나타난다. 이 때는 내리막이라고 계속 브레이크를 밟다가는 브레이크가 타버릴 수도 있다. 여기서는 엔진 브레이크를 적절히 활용해서 속도를 유지 하도록 한다. 낮선 여행지일수록 규정을 잘 따르는 게 현명한 행동이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을 운전을 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컴컴해진다. 어둑어둑해진지 한시간쯤 흘렀을까? 오르막 차로가 끝이 나고 이제 내려가려는데 멀리 앞에 번쩍거리는 도시가 하나 나타나는 것이다. 도시 전체가 화려한 조명을 켜 놓은 것 같은 모양인걸 보니 간만에 도시가 하나 나오는 가 보다. 엄청 밝아 보이는 데 혹시 라스베가스는 아닌가 하며 네비게이션의 남은 거리를 보니 도착지까지 20마일 이상 거리가 남아 있다. km로 계산해보니 3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이다. 수원의 우리 집에서 구로에 있는 회사까지의 거리보다 먼 거리이다. 역시 라스베가스가 벌써부터 보이진 않겠지 하며 라스베가스 가기 전에도 도시가 하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계속 가도 그 휘황찬란한 도시가 가까워지지를 않는다. 신기하게도 네비게이션의 남은 거리가 이제는 10마일 정도이다. 그제서야 저 곳이 라스베가스였구나 하는 확신이 들게 된다. 정말 30km 나 멀리 떨어진 곳에까지 빛이 반짝거릴 정도로 화려한 도시라는 생각에 이른다. 도착하기도 전부터 이거 장난이 아닌데 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쿵쾅댄다. 공기가 워낙 좋기 때문에 수원과 구로 사이의 거리임에도 그 빛이 보이는 것일 게다. 점점 가까워지던 불빛 안으로 들어서 번쩍거리는 도시에 들어설 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도시 야경의 화려함에 매료된고 만 것이다. 해가 진 후에 차를 운전해 올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라스베가스로 운전을 해서 간다면 도착시간이 8시쯤 되게 해서 가면 내가 느꼈던 그 무언가를 반드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 환상의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그런 느낌말이다. 

 

 이제는 멀리서부터 보았던 불빛속으로 들어와 있다. 스트립거리의 화려한 건물들의 조명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 곳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피라미드의 모양을 한 룩소르호텔은 어떻게 저런 건물이 있을 수 있을지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여기와서 놀라운 광경을 말하자면 끝도 없다. 눈 앞에 펼쳐진 모든 것에 감탄하는 중이다. 휘황찬란하다는 말은 이 것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다. 스트립의 중심부에 이르자 모든 호텔들 앞에 차들이 많아 매우 복잡하다. 일단 우리가 묵을 호텔인 임페리얼 팰리스로 찾아 들어가 겨우 주차를 한다. 호텔로 들어가는 입구가 특이해서 한번은 들어가는 길을 놓쳐서 유턴을 두 번이나 한 후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이 곳 라스베가스는 호텔들의 규모가 워낙 커서 주차장이 건물과 한참 떨어진 곳의 넓은 부지에 만들어져 있는 데 반해 우리가 묵을 호텔은 스트립 한 가운데이고 부지가 그리 넓지 않아서 바로 옆의 주차타워 건물이 있어 거기에 주차를 한다. 이미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더 늦어지기 전에 빨리 거리로 나가 구경을 하고 싶다. 

 

 얼른 짐을 챙겨 미로같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빠져 나온 후 카지노를 가로지른다. 체크인 할 데스크에 도착하니 왠걸, 체크인 줄이 흡사 공항에서 발권을 기다리는 것 처럼 길게 늘어뜨려져 있다. 왜 체크인을 하는 데 이렇게 줄을 서지 하며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마도 스트립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면서도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사람이 엄청 많은가보구나 생각을 해본다. 저렴한 방을 잡은 대가를 줄서기로 지불하는 것이다. 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체크인을 하려고 모여 있으니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다. 그래서 체크인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짐을 차에 다시 가져다 놓은 채로 카메라만 챙겨서 길거리를 돌아다니기로 한다. 

 

 드디어 라스베가스 스트립 거리이다. 성수기도 아닐 것 같은데도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한가득이다.인파에 휩쓸려 호텔 주변을 돌아다닌다. 주위에는 번쩍번쩍하고 화려하게 차려 입은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밤이 되서 날씨가 꽤 쌀쌀함에도 불구하고 민소매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이 곳 라스베가스의 열기에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리라. 해적쇼를 보려고 근처에 도착하니 이미 사람들이 무언지 모를 줄을 길게 서 있다. 아직 이 곳 시스템에 익숙치 않아서 저 줄을 서서 기다려야 공연을 볼 수 있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무턱대고 줄을 설까 했지만 10시간이 넘는 운전에 지쳐있는 지금만큼은 줄서는 게 싫다. 일단 거리를 돌아다니기로 한다. 방금 전에 호텔에 도착해서 줄서는 것이 싫어 체크인도 안한 우리들이다. 돌아다니면서 화려한 호텔들의 모습도 구경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려있다다보니 늦은 시간임에도 아직 저녁도 안 먹은 것이 생각난다. 일단 먹을 곳을 찾아본다. 무얼 먹을까 생각해 봐도 햄버거나 피자가 제일 간편하다. 일단 피자를 먹고 또 이곳 저곳 돌아다닌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흥미거리이다. 이러니 세계 곳곳에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구나 싶다.


 라스베가스에서의 첫날은 스트립의 거리를 걸으며 화려한 호텔들을 구경을 했다. 스티립 거리는 옷 벗는 거리를 뜻하는 게 아니고 라스베가스의 가장 중심에 나 있는 큰 도로를 말하는 것이다. 스트립을 걷다 보면 화산 쇼, 분수 쇼 등 무료로 볼 수 있는 쇼들을 만날 수 있다. 이 곳에 와 보기 전에는 호텔 자체가 구경할 꺼리가 된다는 걸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호텔들만 구경하고 있음에도 더 무엇이 필요한 가 싶다.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호텔의 모습과 저마다의 컨셉과 테마가 있고, 또 화려한 조명으로 빛나는 이 곳의 야경에 넋을 놓고 있다. 그렇게 두어시간을 돌아다니다 보니 몸에서 신호가 온다. 졸려서 쓰러질 지경이다. 더 많이 돌아다녀보고 싶은 욕심에 피곤함도 잊고 돌아다닌 것이다. 그런데 한번 피로를 느끼니 피로감이 한꺼번에 쓰나미 처럼 밀려들어오는 것이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 정도다. 서둘러서 겨우 호텔로 돌아간다. 그런데 체크인 하는 줄이 12시반이 넘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엄청 긴 것이다. 비교적 저렴한 호텔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엄청 몰려서 오는 것이라고 밖에 설명이 안된다. 겨우겨우 체크인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와 짐을 풀고 밖을 보니 아직도 사람이 많고 시끄럽다. 잠이 들고 나서도 창 밖에서는 야외의 디스코텍같은 곳에서 큰 음악소리가 들리고 디제이가 마이크에 대고 떠들어서 엄청 시끄럽다. 아마도 새벽 4시 넘어서까지도 계속 시끄러웠던 것 같다. 호텔이 디스코텍 바로 앞에 있었던 탓이겠지만 라스베가스란 곳이 역시 장난 아니게 시끌벅적한 곳이란 것만큼은 확실히 각인된다.


 자는둥 마는둥 하고 일어나니 아침시간이다. 창 밖을 보니 역시 라스베가스의 날씨는 엄청 맑고 햇볕이 쨍쨍 내려쬐고 있다. 썬크림 없이 나갔다가는 완전히 새카맣게 탈 것 같은 날씨다. 창 밖으로는 도심지역 너머에 지층이 훤히 들어나 있는 캐년 지역이 보인다. 그랜드 캐년만큼은 아니겠지만 그와 비슷한 지형을 가진 사막 지역에 세워진 도시라는 걸 볼 수 있다. 공기도 맑고 공기중에 미세먼지도 적어서 멀리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청명한 날씨였다. 샌프란시스코에 있을 때 비가왔던 것을 보상이라도 하려나 보다.

 

내가 생각하기에 라스베가스에 특히 유명한 게 몇 가지가 있다. 호텔들과 카지노, 아찔한 놀이기구, 쇼 그리고 다양한 부페도 빼놓을 수 없다. 일단 이것들은 다 경험 해 볼 생각이다. 일단 우리는 호텔 프로모션 패키지로 부페권을 사 놓았다. 하라스 그룹에 속하는 7개의 호텔의 부페를 24시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부페권이다. 24시간 부페권 한장으로 오늘 아침을 먹고 점심 저녁에 내일 아침까지 4끼를 해결 할 수 있다. 대신 내일은 오늘 아침식사보다 빨리 아침을 먹어야 24시간 안에 들어서 밥을 먹을 수 있다. 계산을 해 보면 엄청 저렴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호텔 이틀 방값과 24시간 부페권 2장을 합쳐서 100달러 정도이니 말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루 숙박에 밥 한 끼를 먹는데에도 100달러가 넘게 들었는데 라스베가스는 물가 개념 자체가 다른 도시임에 틀림없다. 숙식을 싸게 제공하고 카지노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묵은 임패리얼 팰리스 호텔이 다른 호텔들에 비해 좀 저렴하기 때문에 특히 더 저렴한 것이다. 하지만 이 곳의 최상급 호텔들도 150~200달러에 이용 가능한 걸 보면 확실히 호텔들이 저렴하긴 하다. 비슷한 급의 호텔을 우리나라에서 가려면 50만원 이상은 할 것이기 때문이다.


 9시쯤 되서 아침을 먹으러 나간다. 지금 아침을 먹으면 내일도 9시 이전까지는 아침을 먹을 수 있으니 적당한 시간이다. 일단 7개의 호텔들 중 숙박비 기준으로 제일 비싼 곳인 시저스 팰리스 호텔로 들어간다. 아침을 먹는 부페에도 줄을 길게 서 있다. 좌석의 개수가 그리 많지 않아서 자리가 빌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20분 정도 대기하고서야 입장 할 수 있었다. 시저스팰리스의 부페는 약간 심플하고 깔끔하다. 메뉴가 다양하지는 않았다. 일반적인 아메리칸식 아침식사에서 볼 수 있는 것 보다는 좀 많은 정도였다. 육류는 별로 많지 않았지만 빵은 다양하고 과일이나 야채류가 충분해서 마음에 들었다. 부페에서 고기류로 배를 채우기 보다는 야채나 과일을 먹고 싶어했기에 나에겐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여행을 온 후로 식사때마다 빵류를 먹거나 햄버거를 먹는 일이 많아서 과일과 야채를 양껏 먹을 수 있는 이런 부페가 특히나 반가왔다. 하라스 그룹의 7개의 호텔 중 4군데를 다녀보니 대부분 우리나라의 왠만한 부페들처럼 다양한 메뉴들이 있어서 적당히 괜찮은 수준의 음식을 양껏 먹을 수 있었다. 시저스 팰리스 부페의 메뉴가 특히 좀 심플했던 것이었고 다른 호텔부페들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페들 보다 메뉴가 다양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부페메뉴정도에 맥시칸 코너와 이태리 코너정도가 더 붙어있는 정도의 크기였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호텔 Wynn의 부페가 이 곳 부페들 중 최고라는 데 우리는 부페를 그리 좋아하진 않아서 일부러 또 다른 부페를 찾진 않았다. 하라스 그룹 호텔의 4군데의 부페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식사를 했다. 

 

 오늘 낮시간의 라스베가스는 어제의 밤과는 달리 비교적 차분하다. 역시 라스베가스의 조명발을 잘 받은 것이었나 화장 지운 라스베가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래도 라스베가스 호텔들이 정말 엄청나긴 하다. 우리나라에 몇 개도 없을만한 규모의 호텔들이 왕창 몰려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 호텔들 저마다 각각의 테마를 잡아서 볼거리들을 제공하고 있으니 호텔 하나하나 방문할 때마다 눈이 휘둥그래져서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댄다.


 라스베가스에 오면 스트라토스피어 호텔에 가서 꼭 놀이기구를 타고 싶었다. 라스베가스 최고 높이의 스트라토스피어의 꼭대기에서 바깥으로 떨어질 듯 아슬아슬한 놀이기구를 타는 느낌은 어떨까 몇년 전부터 꼭 타고 싶었던 놀이기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가 무서운 놀이기구 타는 건 질색을 해서 아쉽지만 그냥 포기하기로 한다. 탔어도 그렇게 짜릿하지 않고 시시했을꺼야 하며 위로를 하니 타고싶었던 마음도 이내 사그라든다.


  라스베가스가 대단한게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백미는 쇼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물에서 펼쳐지는 쇼인 O 쇼나 Le Reve쇼와 회사 동료에게 엄청 멋졌다고 들은 Ka쇼, 전통 라스베가스 쇼인 쥬빌레 쇼 등이 유명하다. 특히 성수기에 O쇼를 보기 위해서는 항공권이나 호텔 예약보다 O 쇼의 티켓을 먼저 예약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우리는 10월 말의 일정이어서 비수기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예약을 따로 하지는 않았다. 특히 Ka쇼를 본다면 MGM 호텔에서 멤버쉽 카드를 만들면 한장 값에 한 장을 무료 받을 수 있어 50% 할인을 받는 효과가 있다고 해서 어떻게든 현장에서 쇼를 골라서 티켓을 구매하기로 한다. 

 

 쇼를 보기 위해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쇼가 일주일 내내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쇼별로 일주일에 이틀씩 쉬는 날이 정해져 있어서 자신의 여행 스케쥴과 잘 맞춰봐야만 한다. 우리의 경우 화요일에 쇼를 볼 계획이어서 O쇼와 KA쇼는 이미 포기해야만 했다. 티켓판매소에 가서 그날의 티켓 시세를 알아보니 그래도 30퍼센트 정도는 할인이 된다. 미리 생각을 해 두었던 Le Reve 쇼로 결정하고 두장의 티켓을 산다. 이 티켓을 가지고 있으니 든든하다. 공연장도 라스베가스에서 가장 최근에 지어진 Wynn호텔의 극장이다. 얼마나 대단할지 기대하면서 다시 스트립의 남쪽으로 걸으며 호텔 투어에 나선다. 스트립 거리는 생각보다 거리가 꽤 된다. 걷다 보니 호텔들을 구경하고 사진찍는 재미에 빠져 한두시간은 걸었다. 구경을 하나도 안하고 걸어서 돌아오는 데에만도 한시간은 걸릴만한 곳까지 와버렸다.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가장 특이한 호텔인 룩소르 호텔까지는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힘을 낸다. 룩소르 호텔은 피라미드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모양이다. 이렇게 거대한 피라미드형 건물은 이전에는 본 적이 없다. 건물을 지으면 공간의 효율을 생각해서 방 개수를 많이 만들 수 있도록 직사각형으로 만드는 게 보통인데 이런 사각뿔 형태의 건물은 역시 땅덩어리 넓은 곳이니까 만날 수 있는 걸 것이다. 룩소르 호텔을 들어가니 역시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다. 참 신기한 건물이다. 사각뿔 형태의 내부 공간은 꼭대기까지 모두 뚫려 있는 것이다. 피라미드의 외벽에만 호텔 객실이 있고 내부공간은 모두그냥 뻥 뚫린 공간으로 둔 것이다. 역시 공간효율도 세계 최저의 건물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 

 

 보면 볼수록 모든게 신기하고 또 신기하다. 이런 곳이 지구상에 있다는 게 놀랍고, 또 내가 이 곳에 와 있다는 게 놀랍다. 역시 돈이 좋긴 좋구나 라고 말하는 순간 아내와 나는 찌찌뽕을 외친다. 돈도 버니까 이렇게 여행도 할 수 있다는 거지 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한다. 그런데 돈을 많이 주는 데는 자기 시간이 없는데... 

 

 이제 지칠만큼 지쳤다. 점심을 먹으러 돌아간다. 한참을 걸어 스트립 중심부의 플라멩고 호텔로 간다. 호텔 외벽에 이상한 동남아 아저씨 아줌마의 얼굴이 그려져 있어 썩 마음에는 들지는 않지만 음식이 괜찮다는 말이 있어서 이 호텔로 결정한다. 역시 여기서도 잠시 줄을 서서 기다린 후 식사를 한다. 아침을 먹었던 시저스 팰리스 보다는 메뉴가 다양하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호텔부페보다는 깔끔해 보이지는 않지만 또 없는 건 없을만큼 다 갖춰 놓은 부페이다. 그리고 없는 게 없으면 또 어떠냐 싶다. 1인당 부페 4끼를 먹어도 단 돈 15~20달러 밖에 안되는 금액이니 말이다. 역시 라스베가스는 천국 같은 곳이다. 여행중 챙겨먹기 쉽지 않은 야채와 과일까지도 싫컷 먹고 있으니 타지에서 음식이 안맞아 고생한다는 말은 이미 남의나라 이야기이다. 

 

 밥도 먹고 배도 부르고 이제는 쇼핑을 하기로 한다. 미국여행의 재미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쇼핑이다. 환율만 좀 받쳐 준다면 미국에서는 정말 뭐든 싸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특히 자동차는 정말 싸지만 가지고 갈 수가 없으니 패스. 미국 브랜드 의류나 패션아이템은 잘만 고르면 꽤 건질 게 있다. 아웃렛이 유명해서 국내에 잘 알려진 브랜드 의류에 가서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고 사이즈만 있으면 꽤 싸게 살 수 있다. 이미 수차례의 미국 출장에서 많은 쇼핑경험이 있는 나는 우리나라의 반값 이하가 아니면 눈에 차지도 않는다. 정가를 알고 있는 의류를 그에 훨씬 못미치는 가격으로 사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이런 때문에 예전에는 쇼핑에 관심도 없던 내가 미국 첫 출장 이후 쇼핑의 재미에 눈을 뜨기도 했었다. 이런 기대감으로 우리는 건질만한게 있는지 라스베가스에 있는 프리미엄 아웃렛으로 향한다. 좀 돌아다녀 보니 아무리 저렴하다 해도 역시 비싼 브랜드들만 눈에 들어오고 할인 된 가격이라 할지라도 값이 꽤 된다. 게다가 환율도 도와주지 않고 있어 결국 한 두 개 겨우 건지고 쇼핑을 마친다. 

 

 오늘 저녁에 볼 Le Reve 쇼를 볼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스트립 거리에서는 좀 떨어진 호텔인 Rio 호텔로 향한다. 여기서 저녁을 먹고 Wynn호텔로 쇼를 보러 갈 생각이다. 그런데 여기는 늘씬한 금발의 미녀가 섹시한 란제리룩의 노출의상 같은 걸 입고 카지오 근처에서 춤을 추는 게 보인다. 카지노 한가운데서 이렇게 쇼를 하는 시간이 가끔씩 있는 것이다. 넋을 잃고 무대에 빠져든다. 평상시 같았으면 뻔뻔하게 이렇게 잘 못 봤을 것이다. 여기서는 보라고 쇼를 하는 것이기에 마음놓고 감상을 한다. 역시 라스베가스에서는 이런 곳도 있어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눈이 호강을 시켜준다. 고등학교때 영화 쇼걸을 보며 갖게 된 라스베가스에 대한 환상같은 것이 있다. 여행 시작 전에 영화 쇼걸을 한 번 더 봤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쥬빌레 쇼가 그 영화에서 공연했던 라스베가스 쇼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쥬빌레 쇼를 볼까 하며 고민을 좀 했었는데 맛배기지만 이정도 쇼를 보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는다. 여자분들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 곳에는 여성분들을 위한 남성 스트립쇼도 있다고 한다. 근육질의 멋진 남자들이 벗고 나오는 칩앤데일 쇼가 있다고 한다. 직접 본건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남자에게 칩앤데일이라고 말하는 건 최고의 찬사이다. 칩앤데일은 멋지고 섹시한 남자리는 뜻의 대명사로도 쓰인다고 하니 관심있는 여성분은 칩앤데일 쇼 꼭 한번 보시기 바란다. 

 

 호텔 Rio에서 저녁을 먹고 드디어 기다리던 Le Reve 쇼를 보기 위해 Wynn 호텔로 향한다. 주차를 하고 호텔로 들어가면서부터 정장과 드레스를 차려입은 사람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라스베가스를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쇼를 관람하기 위해 정장이나 드레스를 챙겨 온다고 한다. 쇼 관람을 위한 정장을 입는 드레스코드는 강제사항은 아니니 우리는 캐주얼한 복장으로 입장을 한다. 극장의 이름은 Wynn Theater, 들어가니 원형으로 된 Le Reve 쇼를 위한 전용 극장의 모습이 정말 멋지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원형으로 계단이 아래로 나 있고 그 한가운데 물이 채워져 있다. 한 가지 재미난 것은 물과 가장 가까운 쪽의 좌석이 다이나믹 석이라고 해서 가장 저렴하다는 것이다. 다이나믹한 걸 즐기는 우리에게 가장 저렴하기까지 한 이 좌석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티켓을 살 때 선택한 앞에서 두 번 째 줄 좌석에 앉는다. 물이 가득찬 환상적인 공연장을 보니 이런 쇼는 전용 극장이 아니면 공연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할 것 같다. 돌아다니며 순회공연을 할 수도 없고 Le Reve 쇼를 보기 위해서는 오직 라스베가스의 Wynn theater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정말 여길 오길 잘 했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공연이 시작되고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정말 새로운 쇼가 펼쳐진다. 물 속에서부터 높은 천장 꼭대기 까지 모든 공간이 무대이다. Le Reve쇼는 그 유명한 태양의 서커스와 견줄만한 쇼이다. 배우들은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하기도 하고 줄에 매달려 공중에 올라가고 다시 물 속으로 다이빙을 하는 등 환상적인 쇼를 펼친다. 맨 앞 좌석은 공연 내내 물이 튀고 난리다. 왜 다이나믹 좌석인지 알겠다. 주변에 앉은 혈기 넘치는 이곳 대학생들도 연신 환호를 질러 대며 공연을 진정 즐기고 있다. 그런 주변 관객들의 모습까지도 쇼에 다 포함 되는 것이란 생각에 공연 내내 더 신이 난다. 영어가 약해서 공연 감상이 어려울 거란 걱정을 하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다. 그런 걱정일랑 할 필요가 없다. 쇼의 스토리는 말이 아닌 몸짓과 표정 만으로 모두 이해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쇼가 끝나니 아내와 나 모두 벙 쪄 있다. 정말 세상에 이런 공연이 있을 수 있다고 상상도 하지 못했을 만큼 대단했기 때문이다. 

 

 쇼를 본 후 지금은 라스베가스라는 곳에 대한 이미지 하면 카지노 보다 쇼가 더 떠오른다. 이런 쇼를 수도 없이 만들어 내고 매일 공연을 해내고 또 객석을 늘 채울 수 있다니, 이 도시의 거대한 시스템이 믿을 수 없을만큼 크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본 미국의 모든 것들, 땅이며 호수, 사막, 나무같은 자연환경에서부터 사람들의 덩치, 심지어 햄버거까지 다들 큼직큼직하고 거대했다. 그런데 영화를 비롯해 이런 쇼까지 미국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은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는 것을 느낀다.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대단한 나라인것 만큼은 확실하다.


 쇼 종결자를 봤으니 이제 앞으로 눈높이가 높아져서 왠만한 쇼를 봐서는 성에 차지 않을텐데 큰일이다. 그만큼 큰 감동을 간직한 채 호텔로 돌아온다. 이제 시간도 늦었고 오늘 라스베가스에서의 밤은 무얼 하고 보낼까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카지노나 클럽 등등에 꽉꽉 들어가 있는 것 같다. 낮에 아까 카지노에 들어가서 몇 게임 해보니 담배연기가 꽉 찬 카지노에는 영 못 있겠다. 금연 카지노가 나오기 전까진 카지노에서는 오래 못 있겠다. 카지노는 포기하기로 하고... 클럽? 클럽은 좀 겁난다. 우리나라에서도 클럽을 안가봐서 클럽에서 놀 줄을 모른다.  역시 남는 건 사진 뿐, 스트립을 돌아다니면서 라스베가스의 야경을 찍기로 한다.


 삼각대를 가져온 건 아니어서 장노출의 퀄리티 높은 사진을 찍지는 못하지만, 워낙 조명들이 화려하고 밝아서 렌즈의 개방구간에서는 셔터스피드도 제법 나오고, 적당히 찍어도 사진이 잘 나온다.  걸어다니며 구경도하고 사진도 찍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라스베가스의 밤풍경에 홀딱 빠져버린다. 확실히 라스베가스는 낮보다는 밤이 예쁘다.


사진을 찍다 보면 남들도 똑같은 사진을 인터넷에 많이 올려 놨는데 구지 그렇게 열심히 찍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 사진을 찍어 보시기 바란다. 그 재미는 상상 그 이상이다. 사진을 찍는 그 자체도 재밌고 신이 난다. 그 뿐 아니라 나중에 사진을 보면서 내 시야를 거쳐 갔던 것들이 사진을 통해 다시 기억이 되살아난다.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재생이 되는 것이다. 또 신기한 건 당시의 기억이 재생될 때는 대부분 좋았던 기억만이 머리속에 재생이 되는 것 같다. 기분 나쁠때는 셔터를 잘 누르지 않게 되니 셔터를 눌렀던 순간들은 대부분 기분이 좋았을 때이기 때문일거란 추측도 해본다. 이런 점 때문에 나는 사진 찍기를 그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참을 스트립 거리를 걸어다니다 보니 12시가 훌쩍 넘었다. 그 쯤  프리몬트 전구쇼!! 이걸 못봤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 늦었다. 피곤해서 더이상 돌아다니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다. 아쉽지만 이쯤에서 되돌아가기로 한다. 이미 뉴욕뉴욕 호텔 부근이어서 돌아가는데에만도 40분 이상 걸어야 할 것 같다.  엑스칼리버 호텔까지만 사진을 찍고 발걸음을 되돌린다. 돌아가는 길은 아까와는 달리 건너편 길로 걸으니 또 다른 풍경을 구경 할 수 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하나라도 더 보고 싶은 욕신에 계속 발걸음이 멈춰진다. 이미 아내는 옆에서 사경을 헤메는 것 같아 최대한 자제하고 호텔로 돌아온다.


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았지만 하루와 반나절이라는 시간에는 최선을 다해서 돌아다녔다. 너무 많이 걸어서 온몸이 지쳤으니 더는 무리이다. 아쉬움이 남지만 다음 여행을 위해 남겨둔다.


라스베가스에서 떠날 날의 아침이 밝았다.  너무 피곤해서 아침에 미적미적거렸더니 9시가 다 되간다. 9시정도임에도 햇빛이 강렬해 해가 중천에 뜬 것 같다.  어제 아침에 받은 24시간 부페권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제한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부랴부랴 나가서 아침을 먹는다. 부페를 4끼니째 먹으니 흔히 여행지에서 음식을 먹다보면 음식에 아쉬움이 생길 법도 한데, 미국에서 일주일이 다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한국음식이 먹고 싶다거나 김치가 먹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벌써 4끼니째나 부페를 먹고 있기 때문에 야채나 과일을 싫컷 먹을 수 있어서일 것이다. 여행 중간에 이렇게 부페식으로 몇끼 챙겨먹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밥을 먹고 다시 호텔에 들어와 짐챙기고 체크아웃할 준비를 하는데 호텔을 조금이라도 더 여유를 부리고 싶어진다. 오늘은 그랜드 캐년으로 다녀와야 하는데 머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 늑장을 좀 부려본다. 잠시 30분만 더 누워있기로 하고는 거의 한시간을 미적거렸던 것 같다. 11시가 넘은 시간에 더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체크아웃을 하고 차를 돌려 그랜드 캐년으로 향한다.


그랜드 캐년을 향할 때 스카이워크가 있는 웨스트림으로 갈까 가장 많이 찾는 사우스림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사우스 림으로 결정을 했다. 시간이 많았다면 중간에 1박을 하고 둘 바 찾아가면 좋았겠지만 그렇게는 하지 못했다. 오늘은 운전을 좀 많이 해서 그랜드 캐년에 갔다가 돌아와야 한다. 다시 라스베가스로 돌아오지는 않고 동선을 생각해서 LA가는 길목에 있는 라플린으로 숙소를 잡았다. 그래도 오늘 하루동안 7시간 정도는 운전을 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라스베가스를 떠나고 한시간 가까이 지나니 필수 관광 코스인 후버댐 지역이 나온다. 네비게이션에 후버댐이 아직 좀 남은 것 같은데 많은 차들이 한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게 보인다. 뭔진 몰라도 일단 따라 들어가 본다. 뭔지는 몰라도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지 주차하려는 차가 워낙 많아 겨우겨우 주차를 한다.  사람들을 따라 황량해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갔는데 알고보니 이 곳은 후버댐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계곡을 직선으로 이은 다리인 것이었다.  다리 이름은 마이크 오칼라한 팻 틸먼 기념다리라고 하는데 참 부르기 힘들다. 예전 네바다 주의 주지사와 풋볼 선수를 기념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정말 이름 복잡하다. 이 다리는 후버댐의 수명 연장을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 또 이 지역을 통과하는 시간을 꽤 줄여주는 목적도 있다. 계곡을 따라 한참 내려가야하고 갔다가 줄서서 검문하느라 한참 걸리고, 후버댐을 구경하는 차들과 부대끼느라 시간 잡아먹고, 다시 계곡 위로 올라와야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꽤 된다. 실제로 가보니 거의 30분 이상 되는 것 같다. 마이크 오칼라한 팻 틸먼 다리로 가면 일단 30분 버는 것이다.


아뭏든 이 다리로 올라가니 거대한 후버댐의 모습이 한눈에 펼쳐진다. 지층이 훤히 보이는 골짜기에 댐을 막아 물을 모아둔 거대한 후버댐의 모습은 정말 믿기 힘들 정도로 대단하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엄청난 모습을 보니, 다른 차들을 따라 따라들어오길 정말 잘 했다.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로봇들이 이 후버 댐을 배경으로 전투를 벌이는 모습이 떠올라 내가 정말 이 곳에 와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미국의 랜드마크들을 하나씩 내 눈으로 눈도장을 찍고 있다. 어제는 쇼 종결자를 오늘은 댐 종결자를 이건 뭐 나타났다 하면 종결자다. 이런 재미에 미국을 오나보다.


그랜드캐년을 가기 위해서는 이 후버댐이 있는 계곡 지역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다리로 질러가면 빠르지만 후버댐으로 직접 지나가 보고 싶은 생각에 후버댐으로 내려간다. 후버댐이 다리 역할을 해서 계곡 반대편으로 갈 수 있다. 네비게이션은 이 다리가 완공되었다는 걸 모르니 안그래도 후버댐으로 내려가도록 이미 가리키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차로 한참을 내려가는 데 후버댐 근처에서 검문을 하고 있다. 댐의 안전을 위해 검문을 하느라 차가 늘 막힌다고 한다. 후버댐에 이르니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체한 시간이 많아 후버댐에서는 잠깐만 쉬기로 한다. 이번에는 마이크 오칼라한 팻 틸먼 다리쪽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잠시 쉬어간다.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후버댐을 지나 큰 도로 방향으로 구불구불  올라가는 데 가다 보니 큰 도로로 연결되는 길들이 길이 모두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아뿔사, 후버댐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완공이 되었기 때문에 이 길은 폐쇄를 시킨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고 괜히 후버댐을 시간을 들여서 건너온 것이다. 이곳으로 내려왔다가 길 헤메고 다시 후버댐으로 돌아가 처음 올때 지나왔던 다리까지 가는 데에만도 거의 한시간이나 걸렸다.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그랜드 캐년을 즐길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에 좀 서두른다. 그런데 설상 가상으로 가는 내내 도로 공사구간이 계속 있다. 도로 공사를 하는 곳마다 차들이 거북이 서행을 반복한다. 가뜩이나 늦게 출발하고 후버댐지역에서 시간도 많이 보내서 마음이 급한데 도로 사정까지 따라주질 않는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아침에 호텔에서 그렇게 미적대지 않을 것을 하며 후회해도 소용 없다.  그 덕에 밥도 못먹고 운전을 해야만 했다.


먼 길을 달려 힘들게 힘들게 그랜드 캐년 지역에 다다른다. 그랜드캐년에 가까와질 수록 숲이 우거진 지역이 많다. 분명히 후버댐을 지나고 한시간 정도는 나무가 거의 없는 사막같은 지형이었는데, 지나오다 보니 어느새 숲이 우거진 지역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역시 다양한 지형이 있는 나라이다. 게다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그랜드캐년이 있는 곳은 시차도 한시간이 빠르다. 라디오를 듣다가 알게 되었는데, 알고 있던 시간보다 한시간이 더 지나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시차가 다른 시간대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차가 빨라졌다는 것은 해가 더 빨리 진다는 걸 의미한다. 계획을 하면서 시차가 바뀐다는 걸 생각 못한 탓에 그랜드 캐년을 구경할 시간이 한시간이 줄어버렸다.


 그래도 열심히 달리니 다행히 해가 지기 전에 겨우 그랜드 캐년에 도착을 한다. 그나마 아직 해가 떠 있다. 얼추 두시간 정도는 그랜드 캐년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라스베가스에서 자동차로 5시간 정도 걸릴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의 복병들을 만나 7시간은 걸린 것이다. 달려오면서도 혹시나 이렇게 멀리까지 왔는데 못보고 돌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에 점심도 안먹고 그냥 내달렸다. 그랜드 캐년 초입에서 햄버거 두개를 사서 포장을 하고 먹을 시간도 없이 다시 운전을 시작한다. 해의 위치를 보니 아무래도 그랜드 캐년의 모든 관람 포인트를 다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가까운 포인트부터 찾는다. 


그랜드캐년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무언가 엄청난 것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그냥 우거진 숲이다. 게다가 길안내 표지판이 잘 안되어 있어 포인트를 찾기가 쉽지 않다. 관람 포인트별로 교통 표지판이 안내되어 있을 거란 기대와 달리 그냥 그랜드캐년 마을의 주요 기관들을 위주로 표지판이 나와 있어 포인트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마음 급한 상태에서 지도를 보아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부랴부랴 지도를 보며 겨우 포인트를 하나 찾아서 주차를 한다. 포인트의 이름을 보니 지나오면서 더 가까운 포인트 하나는 지나쳤고 이 곳은 두번째 포인트이다. 표지판이 잘 안되어있는건지 내가 길을 못찾는 건지 아니면 그냥 마음이 급한건지 모를 일이다.


수풀 속에서 간신히 찾아 오솔길 같은 곳을 좀 들어가니 드디어 펼쳐지는 그랜드 캐년, 상상했던 딱 그만큼 엄청 웅대하다. 그냥 눈앞에 현실세계같지가 않고 TV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워낙 많이 알려진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익숙한 장소이니만큼 처음에는 세상에 이런 곳이 내 눈앞에 있다니 하며 놀라다가도 금새 익숙해 진다. 워낙 사진만 봐도 엄청난 풍경이어서 그런지 그런 사진들의 모습 그대로라는게 놀랍다. 해가 이미 많이 기울어서 협곡에 있는 돌기둥들에 그림자가 진다. 그림자때문에 베협곡의 바닥은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어 괜히 등골이 오싹하다. 어떤 사람은 위험해 보이는 바위까지도 가서 좋다고 오라며 손짓을 하는데 모험을 좋아하는 나도 괜히 잘못될까봐  몸을 사리고 만다. 


우리가 온 곳은 그랜드 캐년의 사우스림이다. 남쪽 지역이라는 뜻이다. 그랜드 캐년에는 크게 노스림, 웨스트림, 사우스림 지역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그 중 우리는 가장 대중적인 사우스림으로 온 것이다. 사진으로만 그랜드 캐년을 알았을 때는 사막 가운데 있는 협곡이라고 오해했었는데 막상 와보니 울창한 숲 지역인데 깊이 패인 절벽 부분에만 나무가 없는 것이다. 다른 포인트로 이동을 하기위해 절벽에서 조금만 멀어지면 울창한 나무들 때문에 절벽이 어딘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절벽은 다 발 밑으로만 있는 것이어서 산처럼 멀리서도 보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관람 포인트를 찾느라 엄청 헤맸던 것도 눈으로 절벽지역을 보면서 찾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표지판도 좀 보강해야지 우리같은 사람들은 길을 잘 못찾을 것 같다.


그랜드 캐년에 와서 몇가지 놀라운 것이 있었는데 그 중 한가지는  엄청난 추위다. 10월 말인데 정말 한겨울 날씨처럼 춥다. 겨우겨우 찾은 포인트에서도 너무 추워서 잠시 넋을 놓고 구경하다가도 너무 추워서 금새 견딜 수가 없게 된다. 나간 넋이 추위에 곧바로 돌아와 따뜻한 차로 가자고 하니 멋진 풍경을 보는 즐거움이 당장 피부로 와닿는 추위를 이기지 못한다.    추워서 차로 돌아와서 둘러보니 대부분 울창한 나무들이 침엽수 같기도 하다. 따뜻해서 숲이 울창한 게 아닌가 보다. 불과 아까 낮에만 해도 너무 더워서 반팔을 입고 에어컨을 켜고 왔는데 반나절 달려오니 한겨울 같은 날씨로 변해 있는 이 나라 정말 신기한 나라다.


또 놀라왔던 것은 사슴같은 큰 동물들이 그냥 여기 저기에서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마을이 있어도 사람이 적기 때문에 야생동물들이 그냥 사람들이랑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차를 타고 신호대기로 서 있는데 엄청 커서 자동차만한 순록같은 사슴이 차 바로 옆까지 다가오기도 한다. 동물원 싸파리와 흡사했다. 그랜드 캐년에서 해가 지고 얼마 지나지 않으니 주변이 칠흑같이 어둡다 가로등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이렇게 가로등 없이 자연을 유지하는 것도 야생동물들을 보호하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된 그랜드캐년에서 빠져나온다. 해가 진지 두시간 쯤 흘렀나, 우연히 본 하늘에서 엄청 밝은 별자리들을 볼 수 있었다.  하늘이 워낙 맑고 공기가 깨끗한 데다가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였던 것이다. 별이 얼마나 많은지 하늘 가득 별이 떠 있어 마치 쏟아질 것 같다. 별자리들 뿐 아니라 은하수 길도 선명히 보일 정도로 별이 밝게 빛난다. 저런 은하수를 어릴 때 어렴풋이 봤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 은하수를 수십년간 한 번도 볼 수 없었는데 여기에 와서 보게 된 것이다. 잠시 차를 세우고 나가서 하늘을 바라다 본다. 보면 볼 수록 신기하다. 별이 너무 많아 길처럼 밤하늘에 펼쳐진 은하수를 볼 수 있다. 이런 하늘을 볼 수 있다니 얼마나 축복을 받은 일인지 모르겠다. 초등학생이 된 이후로 우리 나라 어디서도 이렇게 많은 별을 보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먼 곳까지 온 보람을 확실히 느끼고 있다. 미국은 어떻게 이런 축복받은 땅을 가지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분리수거도 안하고 탄소배출도 엄청 많이 하는 나라인데 이렇게 깨끗한 자연 환경이 있고, 정말 미스테리한 나라다.  


그랜드 캐년도 대단하고 놀라운 모습이었지만 워낙 익숙하게 봐와서 의외로 시시했는데 별, 동물등 별거 아닌 것들에 놀라고 있다. 그 만큼 여행은 실망도 주기도 하지만 의외의 선물을 주기도 한다. 이런 의외의 것들이 나의 여행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일등 공신들이다.


그랜드 캐년에서 의외의 선물도 받았으니 이제 얼른 숙소로 가서 쉬고 싶다. 숙소는 라플린이라는 도시의 호텔이다. 처음엔 라스베가스로 돌아가려고 생각을 하다가 어짜피 LA로 갈거면 그냥 최대한 LA근처까지 가서 LA에서 한시간이라도 더 있자는 생각으로 검색을 하다가 라플린이라는 도시를 알아냈다. 라플린은 LA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카지노 도시이기 때문에 숙박비도 아주 저렴하다. 내가 보기에는 최상의 조건이다. 싸고 가는 길목이니 말이다.


이미 어두워진 밤길을 4시간 정도 운전해야 라플린이다. 12시 안에만 가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운전을 한다. 오늘도 낮부터 포함하면 거의 10시간이상을 운전하는 날인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실 수 중 하나가 이렇게 운전을 너무 많이 하도록 동선을 잡은 것이다. 평생 다시는 못갈 것 처럼 생각했었 던 것 같다. 미국 서부지역의 명소를 다 가보고 싶은 마음에 무리하게 일정을 잡은 것이다. 7일 동안 하루 평균 500Km을 운전 했으니 앞으로 이 운행거리 기록은 평생 깨지 못할 것이다. 며칠간 부쩍 늘은 운전 실력을 뽐내며 겨우 겨우 라플린에 도착한다. 


트레져 아일랜드 호텔로 들어가니 역시 로비에 카지노 머신들이 가득하다. 다만 라스베가스처럼 사람이 북적대지번 않고 아주 한산하다. 카지노를 가로질러 지나가고 나니 한적한 카지노와 대비되게 한 식당에서 시끌시끌하게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맥주 한잔씩을 하고 있다. 또 흥겨운 컨트리 음악이 울려퍼지며,  식당 한 가운데 있는 마루 위에서 뚱보 아줌마 아저씨들 여럿이 음악에 맞춰 부둥껴 안고 춤을 추고 있다. 마치 미국 서부 영화에서 나온 주점같은 분위기에 미국 시골의 풍경 처럼 느껴져 꽤 인상적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카지노 호텔에서 미국 서부의 컨트리 분위기를 느끼다니 참 인상에 남는다. 다만 컨트리 풍의 분위기인 호텔에 귀신, 요괴 인형 장식들이 여기 저기에 놓여 있어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더 옛날 미국 영화 같은 분위기가 났지만, 유쾌하지 않은 장식들 때문에 다시 찾고 싶지는 않은 독특한 호텔로 기억에 남는다. 


라플린의 호텔도 라스베가스처럼 카지노 호텔이어서 가격은 정말 저렴하다. 잠만 잘 곳을 찾는다면 왠만한 모텔보다도 훨씬 저렴한 카지노 호텔이 정말 최선의 선택이다. 전반적으로 호텔로서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불의의 사고만 당하지 않았더라면 점수를 좀 더 줄 수도 있었을 지 모르겠다. 샤워를 하다가 수도꼭지에  등 아랫쪽이 패인 사고 말이다. 내 실수로 다쳤으니 호텔 탓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이 우울해져서 이 호텔에 호감이 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추워서 욕조에서 따뜻한 물을 맞으며 뒤돌아서 쪼그리고 있다가 일어나려고 엉덩이를 드는 순간 아래를 향하고 있는 수도꼭지에  등 아랫쪽을 심하게 긁히고 만 것이다. 긁히면서 얼마나 놀랐는지 비명을 질렀는데, 순간 큰 부상이란 생각이 들면서 너무 억울한 마음에 기분이 팍 상하고 만다.남은 이틀의 일정동안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할 정도로 아팠는데, 그나마 다행인건 피부가 까진거지 뼈를 다친게 아니어서 아픔을 참아가며 남은 일정동안도 잘 돌아다닐 수 있었다. 향후 아물은 다음에도 상처 부위에 흉터를 남기고 만 안타까운 아찔한 상황을 겪은 곳, 라플린. 아침이 밝자마자 서둘러 떠나고픈 마음에 사진도 몇장 건지지 못했다. 지우고 싶은 기억의 라플린, 흉터와 함께 지우지 못하게 되어버렸지만, 남은 여행까지 망치지 않으려면 완전 조심해야겠다.


이제 LA로 향하는 길, 여행을 하는 마지막 도시다. 여행 스케쥴을 이렇게 짤 것 같았으면 애시당초에 한공 티켓을 샌프란시스코 인 LA 아웃으로 할 걸 그랬다. LA에서 점심을 먹을 것을 목표로 오전 시간부터 열심히 달린다. 그랜드 캐년 가는 날 아침에 미적거린 것 때문에 교훈을 얻었기에 더이상 미적거리는 아침은 없었다. 여행을 온지 일주일이 되니 운전하면서 보여지는 주변의 풍경들은 더 이상 신기한 모습들이 아니다. 오히려 어제 그렇게 추워서  한 겨울 같았는 데, 지금은 더워서 에어컨을 틀어야 할 정도라는 점이 좀 신기하다. 지루한 운전을 계속 하는 중 저 멀리 나타난 기차가 우리를 한번 놀라게 한다. 미국의 열차는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세어보니 연결된 기차가 50량도 넘게 연결되어 있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다. 정말 기차종결자까지 보고 규모에 대해선 미국에 까불 수가 없을 것 같다. 


중간에 잠시 점심을 먹으러 인앤 아웃에 들러 버거로 점심을 해결하고 잠시 후 LA에 도착. LA에 가면 뭘 볼지 여행가이드 책의 LA편을 뒤적거리며 찾아본다. LA는 워낙 대도시이고 테마파크가 많다. 우리의 일정상 테마파크는 제외하고 알아본다. 그래도 살면서 더 올 기회가 다른 곳보다는 많이 있을 거란 생각에


하루라는 LA일정은 지금까지처럼 빡센 관광을 하기 보다는, 빡세게 돌아다닌 그간의 여행을 여유롭게 마무리 하고 다음날 비행일정에 혹시 모를 변동사항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공항 근처의 레지던스 인에 숙소를 잡았다. 

그렇게 여행의 마지막날을 보낸다. 긴 여행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산책하자는 마음으로 여행의 마지막 날을 보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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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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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날 LA에서의 일정추가하고 마무리 할 예정




- 2011년에 작성